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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 프로그램의 성행에 놓여있는 문화적 흐름[서병기의 콘텐츠 이야기]
나는 솔로

연애 프로그램 또는 데이팅 리얼리티쇼가 성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예능에는 유행이란 게 있는데, 음악 오디션, 먹방·쿡방 예능을 거쳐 연애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연애를 안 하고 연애 시뮬레이션만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연애 리얼리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소비하는 건 싫어서 실제 연애는 안 하거나 못하고 남의 데이팅 리얼리티만 즐긴다는 얘기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너무 꽁냥거리기만 하는 것도 보기 싫다.

‘나는 솔로’ 16기 돌싱특집의 인기는 그런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해 싸우기도 한다. 출연자들도 자신을 포장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원래 캐릭터를 보여주길 원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도 짝을 찾는 예능이 있었다. MBC ‘사랑의 스튜디오’(1994~2001)는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한 후 커플 탄생은 물론이고 엇갈림까지 보여줘 인기를 끌었다.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가슴 설레는 만남의 기회와 선택의 순간을 즐기는 KBS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2005~2006)도 인기가 좋았다. SBS ‘짝’(2011~2014)은 짝없는 남녀의 짝 찾는 과정을 그렸다.

요즘은 ‘짝’을 계승한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 ‘나는 솔로’가 100회를 훌쩍 넘기며 스테디셀러 자리를 굳혔고, 외전인 ‘나는 솔로,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 ‘ 나솔사계’)’도 본판에서 못다 한 이야기와 궁금증을 풀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16기 돌싱특집에서 화제가 된 상철이 시애틀 근교 바닷가에서 자연주의적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 소개됐다. ‘시애틀 유교보이’ 상철은 요즘 많은 여성으로부터 DM 등을 통해 연락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솔로’10기 영철-현숙 커플은 지난 6월 이별을 했지만 결국 재결합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최커’와 ‘현커’가 유행어가 됐다

시즌제 데이팅 리얼리티로는 ‘환승연애’와 ‘솔로지옥’ ‘하트시그널’ ‘돌싱글즈’ 등이 큰 관심을 일으켰다. 넷플릭스 ‘솔로지옥’과 티빙 ‘환승연애’는 시즌3를 연내에 방송할 계획이다.

사람들은 방송에서 짝을 이루고도 ‘현커(현실 커플 또는 현재 커플)’인지를 궁금해한다. 연애 프로그램 안에서 ‘최커(최종 커플)’가 되어도 현실에서 커플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다른 이성과 ‘현커’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다른 연애 프로그램에 나온 이성과 ‘현커’를 이룬 크로스오버 커플도 있다. ‘최커’와 ‘현커’는 이 시대 유행어가 돼버렸다.

지난 10월 종영한 MBN ‘돌싱글즈’ 미국 편인 시즌4에는 사상 최초로 ‘전 남편’이 등장하기도 했다.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하림의 ‘X’가 방송에 나와 하림의 현재 애인인 리키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

이제 돌싱, 재혼은 익숙하면서 핫한 단어가 돼버렸다. 게다가 캐릭터가 세다. ‘나는 솔로’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기수는 돌싱특집인 16기였다.

‘나는 솔로’ 돌싱특집은 텐션과 자극성을 올려놓았다. 10월 4일 종영하고도 ‘라방’, SNS 등에서 끊임없이 화제를 모은다. 훈훈한 이야기가 아니다. 16기는 방송할 때부터 남의 이야기를 수시로 하는 등 뒷담화와 정치질로 데이팅 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를 보는 듯했다.

방송이 끝난 후에도 옥순이 영숙과 갈등을 빚어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출연자 중에는 주인공병에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짝을 찾는 예능은 계속 나오는데도 프로그램이 잘된다. 여기에는 문화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뚜렷한 특징들이 있다. ‘솔로지옥’의 김재원 PD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들이 예전처럼 ‘설렘’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지금처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근의 연애프로그램들은 설렘 외에도 거절과 오해, 인간 관계의 복잡함에서 오는 슬픔, 분노, 민망함, 배신감 등등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안락한 내 집 소파에 앉아 창밖의 폭풍우를 볼 때 느끼는 묘한 쾌감과 비슷한 감상을 느끼게 한다. 내 삶에 아무 영향도 못 끼치지만, 보고 있으면 재밌는 게 남의 연애사니까.”

연애 프로그램은 출연자에게 득이 많다. 이들의 이야기는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계속 화제성을 제공한다. ‘나는 솔로’ 남규홍 PD는 “데이팅 리얼리티 쇼를 보면 출연자들의 세상을 보는 방식, 자기 생각, 가치를 판단하고 느끼는 점 등을 보면서 인생과 세상에 대한 큰 공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남 PD는 “2023년 현재 한국인의 사랑을 보려면 ‘나는 솔로’를 보면 된다”고까지 말한다.

이러니 ‘대(大)관종시대’에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플렉스(자랑질)’ 하기에 좋다. 자신을 드러내는 최고의 방법이다. 출연자들은 방송이 종료됐는데도 한 번씩 모여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연예인급 인기를 얻기도 한다. ‘나는 솔로’ 16기 영숙은 방송을 끝내고 인사를 전하는데, 무슨 수상소감을 밝히는 듯했다. “해외영화제 다녀왔냐” “자의식 과잉이다”는 반응도 나왔다.

방송에서 나온 이들의 스타일, 취향, 사고방식 등 라이프스타일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엿보고 싶은 소비시장은 충분히 존재한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나가는 카페, 식당, 칵테일바, 음악은 최고의 홍보 기능을 수행한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 데이팅 리얼리티는 일회성 출연으로 증발하는 관계가 아닐 정도로 네트워킹과 커뮤니티가 잘 짜여있다.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사회에 나오고 나서도 또 하나의 동창회가 생기는 셈이다. 물론 남녀공학이다.

환승연애

데이팅 리얼리티, 기본형과 변형형이 다양하게 공존

데이팅 리얼리티도 점점 다양해진다. 짝을 찾는다는 본분에 더 충실한 ‘나는 솔로’처럼 보다 현실적이고 투박한 기본형도 있고, 사랑의 판타지를 한 스푼 집어넣거나 전 애인인 ‘X(과거 애인)’ 등을 투입해 리얼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복합적인 관계를 설정해 재미와 강도를 배가시키는 변형형도 많다.

데이팅 리얼리티의 기본형을 심심하게 만들어 버린 시작점은 ‘환승연애’였다. ‘환승정류소’에서 새로운 이성으로 갈아탈지, 말지를 결정하는 로맨스 예능인데, 전 남친, 전 여친과 같은 집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짝을 찾는다. 새로운 짝을 찾는데 ‘X’가 신경이 쓰인다. 제작진은 X방, 토킹룸 등 장치를 만들어 이를 부추긴다. 시즌2의 희두가 X방을 보고 나연과의 과거 연애시절이 생각나 오열하기도 했다.

X 때문에 흔들려 새 애인을 못 만들고 전 애인과 다시 사귀기도 한다. 시즌2의 나연은 초반부터 규민 등 남자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한 탐색전을 펼치다가 전 남친인 희두가 들어오자 다른 남자와는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해은은 X인 규민에게 다시 한번 만남을 가져보자고 애원했지만, 싸늘해진 규민으로 인해 눈물로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해은 누나만을 바라보는 잘생긴 연하남 현규를 만나 새로운 커플을 탄생시켜 시청자의 큰 지지를 받았다. 이런 게 ‘환승연애’의 묘미이자 관전 포인트다.

‘환승연애’는 일본에서 ‘러브 트랜짓(LoveTransit)’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돼 방송됐다. 거기에도 ‘현규’도 있고, ‘해은’도 있었다. 우리가 새로운 커플 탄생을 더 반긴다면, 일본은 X와 다시 사귀는 걸 좋아한다.

변형형 연애 프로그램에는 연애심리 게임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이 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면 ‘하트’가 뜨는 앱 ‘좋알람’이 작동되고, 그렇게 해서 가능한 하트를 많이 쟁취한 참가자가 위너가 되는 게임이다. 동성(同性)의 하트로 ‘좋알람’이 울린 적도 있다. 실제 자스민이 백장미를 선택하는 등 동성을 좋아해 ‘女女커플’의 반전이 일어났다. 꽃사슴과 팅커벨 등 두 남자와, 백장미라는 한 명의 여성을 마음에 두며 애정을 분할해온 자스민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전략가로 통했다.

동성 찐친들끼리 떠난 여행지에서 시작되는 남녀 간 리얼 로맨스를 통해 우정인지, 사랑인지를 알아보는 ‘각자의 본능대로’도 있다. 아예 자신에게 접근하는 이성이 돈인지 사랑인지를 잘 헤아려 짝을 찾아야 하는 ‘러브캐처 인 발리’는 연애 심리를 더욱 복잡하게 가동시킨다.

연애 프로그램 많아도 잘된다

연애 프로그램이 많아도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떡볶이집이나 책방이 몰려 있어도 잘되는 논리와 유사하다. 연애 리얼리티는 확실히 팬덤이 있는 예능 장르임이 확인됐다. 연애 프로그램은 언스크립트(예능)지만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상상과 망상의 여지를 준다.

제작진도 이제 러브하우스에 들어와 장을 보러 가고, 그날 저녁 문자를 보내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좀 더 치밀한 구성을 해놨다. ‘환승연애’는 자기소개서를 X가 쓰게 해 뭉클해지기도 한다. 새로운 이성에 대한 정보도 X를 통해 입수하게 하거나, 마지막 선택하러 가는 길도 X가 운전을 해주며, 조수석에서 새 남자를 만나러 내릴지, 남을지를 결정하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X가 누구일까를 상상하고 추적한다. 자연스럽게 시청자 참여가 이뤄진다.

“규민은 해은이 그렇게 좋다는데 왜 그래?” “둘은 어떤 사연으로 헤어졌을까” “X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새로운 애인을 찾았으면 한다” 등 상황에 이입돼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해은은 거울 앞에서 울고 있다. 궁상 맞다고 하지만, 누구나 찌질한 모습이 있을 수 있다(해은이 울면서 화장을 했는데, 화장품 PPL이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시즌1에서는 보현의 전 남친 호민이 찌질하고 구차하다고 네티즌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연애 예능은 나의 연애가 어떠했는지를 대입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실제 ‘나는 솔로’ 참가자 중에는 “나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이불킥’ 상황이지만, 그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도 헤어졌을 때 저랬구나. 세월이 지나면서 성장도 했구나’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 특히 ‘환승연애’는 ‘헤어진 남자(여자)친구가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살고 있을까’와 ‘그럼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헤어질 때의 찌질한 모습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솔로지옥’

‘솔로지옥’ 통해 글로벌 예능 가능성 타진

글로벌 OTT에서 드라마는 잘 나가지만 예능은 쉽지 않았다. 글로벌 예능의 가능성을 타진한 콘텐츠는 2021년 론칭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솔로지옥’이었다.18개국에서 TOP 10에 진입했으며 4주간 6220만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지상파·케이블 방송에서 제작하는 리니어형(linear·선형) 예능과 OTT형 예능은 콘텐츠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에 둘은 점점 분화하면서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OTT형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이 찾아오게 만들어야 하고, 다음 회차를 극도로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연애예능은 갈등과 화해 양상과 함께 누구와 매칭이 될지 등에 대해 계속 호기심을 제공해야 한다.

‘솔로지옥’ 시즌1은 출연자인 송지아가 이슈를 독점했지만, 방송되는 국가마다 선호하는 외모나 스타일이 다양하게 나타나 그것에 맞게 섬네일도 달라졌다. 시즌2는 좀 더 많은 솔로가 관심을 받았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특성이 구체적이고 다양해져 스토리로는 시즌2가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 데이팅 리얼리티는 남녀 간 연애감정의 연결과 엇갈림 외에도 출연자들의 심리, 멘탈(의식구조), 라이프스타일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볼때 ‘솔로지옥’ 시즌2는 최적의 프로그램이었다.

김진영(덱스)과 신슬기 등이 인기를 얻었고, 특히 시즌2 중간에 투입된 김진영은 ‘태계일주’ 등을 통해 세계적인 셀럽으로 유명해져 있음이 확인됐다. 인도 기차 안에서 젊은 여성이 덱스를 알아보고, 사진 함께 찍기를 요청했다. ‘솔로지옥’ 시즌3에서 덱스는 MC로 스튜디오에 앉아있다. 금의환향의 좋은 예다.

김재원 PD는 ‘솔로지옥’의 인기 요인과 차별화 포인트에 대해 “‘솔로지옥’은 전통적인 한국식 데이팅에서 보여준 적 없는 ‘핫함’을 표방하며 시작됐다. 글로벌 시청자들은 그 ‘핫함’을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동시에 한국식 데이팅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은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여주시는 것 같다.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를 잘 비벼서 비빔밥처럼 내놓은 게 솔로지옥만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솔로지옥’ 제작진에 따르면, 시즌3는 시즌2에 비해 결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좀 더 솔직해지고 출연자들끼리 싸우기도 해 제작진을 당황하게 한다는 것. 이 말은 ‘솔로지옥’도 ‘나는 솔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솔로지옥’이라는 형식에 ‘나는 솔로’ 느낌이 가미된다면 시즌3는 더욱 기대된다.

연애 프로그램은 공식 같은 게 있다. ‘하트시그널3’에서 김강열이 박지현에게 화려한 직진을 할 때, ‘환승연애2’에서 중간 투입된 정현규가 성해은에게 “내일 봬요. 누나”라고 솔직당당하게 매력을 어필할 때, 재미와 쾌감이 극대화되는 이른바 ‘연애 프로그램의 도파민 법칙’이다. 그럼에도 채널A ‘하트시그널4’는 출연자들이 신중하게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레 타진하며 신민규-유이수, 한겨레-김지영 두 커플을 탄생시키며 지난 8월 종영했다. 자유롭고 유연하고 세련된 청춘남녀들의 서로 다른 감성이 잘 어우러져 좋은 세계관을 형성했다.

지난 10월 MBN ‘돌싱글즈4’ 미국 편을 끝낸 박선혜 PD가 “ ‘중매 프로그램’이라는 수식어가 연애 프로그램으로서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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