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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년, 매일 찾아오는 기후 재난”…아시아 기후청년들이 절망을 극복하는 법 [지구, 뭐래?]
인도네시아 대학생 누룰 사리파는 K-POP 팬덤을 토대로 기업들에게 기후 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 [누룰 사리파 제공]

[헤럴드경제=김상수·최준선 기자] “매달, 매일 기후 재난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처참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텐데, 과연 이 공포를 이기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인도네시아 청년 기후활동가 누룰 사리파)

기후 위기의 당사자인 전 세계 청년들의 불안과 우울감이 커지고 있다. 중요한 의사 결정은 늘 기성 세대가 주도하지만, 미래 세대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기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아이를 낳을 엄두를 못 내겠다는 이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헤럴드경제는 비영리단체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과 함께 아시아 각국에서 환경 보호 활동에 뛰어든 청년들과의 온라인 대담을 진행했다. 실제 환경 운동에 나서며 겪는 답답함, 좌절,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 등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했다.

케이팝 팬덤을 기반으로 기획사에 기후 변화 대응을 요청해온 ‘케이팝포플래닛’의 누룰 사리파(인도네시아, 22), 17년 간 350.org 등 국제환경단체에서 활동해 온 재정 활동가 척 바클라곤(필리핀, 40)이 대담에 참여했다.

또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 직접 참여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대만 청년 단체 ‘TWYCC(Taiwan Youth Climate Coalition)’의 리온 양(22)과 찌아이 린(29), 일본 청년 단체 CYJ(Climate Youth Japan)의 코하나(22), 한국 GEYK의 김지윤(31), 이선재(21)씨도 한 데 모였다.

▶“기후 우울감, 인도네시아에선 일반적”=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최근 공개한 6차 평가 제3실무그룹 보고서에서는 IPCC 보고서 최초로 ‘기후위기 우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기후위기로 인해 불안, 스트레스 등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가 증가할 것이며, 특히 젊은층, 노년층, 기저질환자 등이 취약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번 대담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직간접적인 기후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실제 ‘기후 우울(climate grief)’을 겪은 경험이 있나?

▷누룰: 인도네시아에선 기후 우울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기후 위기에 무관심한지 보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에서 큰 홍수가 났을 때를 기억한다. 큰 비가 2주 이상 이어졌고, 사람들은 전기도 음식도 없이 갇혀 있었으며, 통신은 두절됐다. 이런 재난들이 매년, 매일 반복되는데 우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코하나: 우리같은 청년들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을 느낀다. 운 좋게도 내가 속한 단체는 정부와 만나 얘기하거나 COP26에 참석해 토론할 기회를 가지기도 했지만, 실제 정책을 실행하고 결정하는 데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되는지 의구심이 든다.

또 최근 국제 정세가 불안정하다보니 기후 변화와 같은 이슈는 안보 등 문제에 비해 마이너한 것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끝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김지윤: 차라리 기후 위기라는 상황을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냥 내키는 대로 일회용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누가 뭐라고 할 때 ‘신경 꺼’ 하면 훨씬 편하지 않겠나. 하지만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지금은 모른 척할 수 없게 됐고, 내 삶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옥죄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가끔 울적하다.

김지윤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 공동대표 등 청년들이 지난 1월 서울 종로고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한 대선후보 토론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GEYK 제공]

-기후위기 우울증이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되고 있다. 두 현상 간의 연결 고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찌아이 린: 일반적으로 자녀의 건강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대기 오염 때문에 자녀가 천식이나 알러지 증상을 보이는 것을 다들 걱정하지 않나. 최근 발간된 IPCC 보고서 상 미래 시나리오를 보면, 이번 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본격적인 기후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져 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비용은 더 높아질 것이다.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대만 청년 단체 TWYCC 회원인 찌아이 린이 지난해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청년행사(COY 16)에서 소속 단체의 프로젝트를 다른 청년들에게 시연하고 있다. [TWYCC 제공]

▷누룰: 인도네시아는 사실 아이를 낳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기후 위기가 정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우기 때마다 어딘가에 대피하거나 먹을거리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등 큰 불편을 겪는다. 대도시인 자카르타에조차 마찬가지다.

▷리온: 지속가능한 삶은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친환경 건물에서 살거나, 식물성 패티 햄버거를 먹을 때 필요한 돈을 생각해보라. 물론 시간이 지나면 비용은 다소 낮아지겠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기후 리더십, 5점 만점에 2점”=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미래 세대의 불안감에 상응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대담에 참여한 5개국 모두 기대의 부합하지 못했다. 청년 활동가들이 5점을 만점으로 각 정부의 환경 방향성을 평가한 결과, 대만과 일본, 필리핀은 3점을,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2점을 받는 데 그쳤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한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기후환경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청년 활동가들이 한 데 뭉쳤다. 이들은 각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후 위기 대응 및 에너지 정책에 대해, 5점 만점 기준 2~3점의 낮은 점수를 매기며 더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여러분이 속한 나라의 탄소 중립 및 기후위기 정책을 평가한다면?

▷척: 필리핀은 현재 에너지의 40%를 석탄 발전원에서 얻고 있고,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지난 2008년,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를 위한 보조금 관련 법이 통과됐지만 10년이 넘도록 시행규칙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화석연료 업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필리핀 국적의 청년 활동가 척 바클라곤은 그린피스, 350.org 등 국제환경단체에서 20년 가까이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해 왔다. [척 바클라곤 제공]

긍정적으로 평가할 측면도 있다. 2020년 말, 우리 정부는 신규 석탄화력 발전소에 대한 건설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아직 건설이 승인되지 않은 것들에 한해서만 적용하기로 한 탓에 국민들의 저항이 적지 않다.

▷누룰: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 정부는 경유에 팜유를 20% 섞은, 이른바 ‘B20’ 제품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는 하루 빨리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석탄이나 가스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도네시아 전력의 80% 이상이 석탄, 가스 등 화력발전원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이는 수많은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전소로 인해 오랑우탄 등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고, 인근에 마을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리온: 현재 대만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5~6%에 그치지만, 2025년까지는 20%로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2027~2028년은 돼야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속도를 높여야 하고, 특히 산업계로부터 더 많은 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코하나: 현재 일본의 에너지원 비중을 보면 원전 6%, 재생에너지 18%, 석탄 32%, LNG 37% 수준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6%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어려운 목표지만,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방식으로 적합한 부지를 확보해 태양광과 육상 풍력을 늘려나가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중, 일본 청년 단체 CYJ의 회원인 코하나가 한국관(KOREAN PAVILION)에서 탄소 중립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코하나 제공]
[각국 정부 발표 자료]

-한국에선 기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한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여러분 나라에선 원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리온: 대만 정부는 2025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해서는 전력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때문에, 이 정책은 많은 비판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차이잉원 총통 집권 기간 내에 원전 문제에 대한 국민 투표를 두 번이나 거쳤다. 하지만 결국 기존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코하나: 일본 정부는 현재 6% 수준인 원전의 비중을 2030년까지 20~22%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일본은 원전 사고의 피해를 크게 겪었던 나라 중 하나라 이에 대해 논란이 많다. 개인적으로 원자력은 발전소 인근 시민들의 동의를 얻는 등, 운영 과정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용후 핵연료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역시,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결코 예단할 수 없다.

▷척: 현재 필리핀에는 원전이 없다. 40년 전 마르코스가 집권하던 시절, 원전 건설이 추진된 적은 있다. 하지만 당시 독재 정권은 원전 건설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겼고, 가동 되기도 전에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에 부딪혔다. 또 해당 원전이 가동될 예정이었던 해에 미국의 드리마일 핵발전소 참사까지 일어났기 때문에, 결국 건설은 중단됐고 이후 줄곧 필리핀에선 원전이 가동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과대포장 문화, 외국 친구들에게 부끄러워”=각국 청년들은 일회용 플라스틱 등 매일같이 쏟아지는 폐기물 문제에 대해서도 안타까움도 공유했다.

▷코하나: 1인당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 규모로 봤을 때 일본은 세계 2위다. 2018년에 버려진 플라스틱 폐기물의 3%만 재활용된다고 한다. 2020년 7월부터 플라스틱백(비닐봉지)의 무상 지급을 금지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하지만 아예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한 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만큼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일본에 방문한 한 외국 친구는 과대포장 문화가 충격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온: 대만 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일회용품의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다. 지금도 일회용컵과 다사용컵 사이에 최소 15센트의 가격 차이를 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지 음료 가격의 10~20% 수준이다. 다만, 프랜차이즈 편의점이나 음료 매장 외에, 전통 시장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만 청년 단체 TWYCC의 회원인 리온 양(왼쪽 첫번째)이 다른 회원들과 함께 탄소 절감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TWYCC 제공]

▷척: 필리핀에서도 많은 것들이 플라스틱에서 종이로 바뀌고 있다. 일부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선 정책적으로 다사용 유리컵만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폭넓게 적용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 모든 기업이 그런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무까지는 부과되지 않고 있다.

▷누룰: 일본의 재활용 문화가 뒤처진다고 했는데, 인도네시아에선 아예 그런 문화가 없다고 보면 된다. 폐기물 관리 시스템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각자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하더라도, 결국 한꺼번에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정부도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계획하고 있지만, 2030년부터 규제가 시행된다. 아직도 8년이나 남았다. 너무 많이 낭비하고 있고, 이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울에 갇히기보단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기후 위기라는 장벽 앞에서 청년들은 무력감과 우울감을 공유했지만, 그럼에도 변화를 위한 의지를 다지고 서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척: 사실 필리핀은 환경 운동가들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최대한 전략적으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실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거기에서 시작된 변화들에서 희망을 본다.

▷이선재: 기후 위기를 체감할수록, 우리 다음 세대가 과연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아이를 낳고 싶다. 미래 세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더 나은 복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온: 과거에는 파업이나 연설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은 조금 더 창의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기후 위기와 관련된 미래 시나리오를 공상과학 콘텐츠와 엮어보는 방식은 어떨까. 기후위기에 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김지윤: 기후 변화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은 아시아 대륙이라고 한다.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 배경이 각기 다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이 협력해야 할 것 같다.

human@heraldcorp.com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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