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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환경 감수성 시대

최근 한 중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학생이 교단에 누워 휴대폰을 사용한 사실이 알려져 큰 논란을 일으켰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유난히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사건 보도를 접했다. 기자가 뉴스를 보도하자, 사회자가 “이는 ‘여교사’가 아닌 ‘교사’의 문제”라며 용어를 정정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교단에 누워 휴대폰을 썼다.’ 이 사건의 본질은 교권 훼손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 사건을 떠올리면 본질에 앞서 ‘여교사’가 각인돼 있다. ‘여교사 수업 시간에 남학생이 교단에 누워 휴대폰을 사용했다.’ ‘교사’가 ‘여교사’로, ‘학생’이 ‘남학생’으로 바뀌는 순간, 이 사건은 이내 교권이 아닌 성 이슈로 변질된다.

이를 인지한 사회자와 그렇지 못했던 기자. 대본에 없던 탓인지 이후 보도에도 여교사를 교사로 정정하는 몇 번의 과정이 반복됐다. 그래도 이들의 젠더 감수성이 반가웠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반성했다. 지난 말과 글, 행동.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렇게 다시 회상하고 곱씹는다.

감수성(感受性)을 뜻 그대로 풀이하면,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나와 다른 삶을 내 삶처럼 고민해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요즘 시대에 가장 중시되는 감수성은 젠더 감수성이다. 감수성이 뛰어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당연했던 여교사가 교사로 보인다.

아직 갈 길은 멀더라도 젠더 감수성의 방향성은 최소한 자리매김했다. 젠더 감수성 아동교육, 젠더 감수성 연수, 젠더 감수성 서적 등이 인기다. 누구도 공개적으로 젠더 감수성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젠더 감수성 뒤를 이어야 할 시대적 감수성이 있다. ‘환경 감수성’이다. 환경을 내 삶과 무관한 존재, 혹은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내 삶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감수성이다.

지난 27일 열린 헤럴드디자인포럼2022에선 건축, 모빌리티, NFT 등 각 분야의 디자인 전문가가 강연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하나같이 환경을 언급했다는 데에 있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인간이란 자연의 일부이고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을 구상할 때도 향후 자란 식물들 속에 묻혀 있을 이미지까지 염두하곤 한다”고 전했다. 벨기에 건축가 뱅상 칼보는 “생물체의 특성을 건축물에 적용하려 한다”고 했다. 제네시스 디자인 실장인 윤일헌 현대자동차 상무는 “비싼 가죽 인테리어로 고급차 이미지를 구축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만 체감하는 변화가 아니다. 기업들은 앞다퉈 ESG를 광고하고, 전 세계 모든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분명 환경 감수성은 높아지고 있다.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게 어쩐지 민망한 시대가 왔다. 감수성이 뛰어나면 보이지 않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과대포장, 비닐, 음식물.... 여교사가 교사로 보이듯, 그렇게 우린 고민을 시작한다.

혹시나, “환경은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한다면, “유별나게 민감하네”라고 느낀다면, 하루빨리 사고 전환을 꾀하는 게 좋겠다. “어디서 여자가”라는 식의 발언이 될 시대가 머지않았다. 젠더 감수성이 그러했듯.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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