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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 이런 기타리스트가 있다니”…최희선, 세대·국적 넘어 클래스 입증 [고승희의 리와인드]
2022 동두천 록페스티벌
‘최고의 명장면’은 최희선 밴드
세대ㆍ국적 초월해 대동단결
 
다양성 사라지고 K팝 대세된
록음악ㆍ기타리스트 멸종의 시대
후배 음악인들의 이정표이자 희망
2022 동두천록페스티벌 무대를 꾸민 기타리스트 최희선 [최희선 밴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국에 이런 경이로운 연주를 하는 기타리스트가 있는지 몰랐어요. 정말 놀랐습니다.”

독일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는 한 관객이 최희선 밴드의 공연을 마치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늘 처음 본 뮤지션인데 왜 이제야 알게 됐는지 억울한 마음이 든다”며 벅찬 감동을 쏟아냈다.

‘운명적 만남’이었다. 대형 전광판으로 불길이 타오르며 독일 작곡가 카를 오르프가 쓴 ‘카르미나 부라나’의 제 1곡 ‘운명의 여신이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타리스트 최희선의 공연을 알리는 신호였다. 무대 아래에서 마침내 올라온 최희선이 자신의 두 번째 앨범 ‘매니악(Maniac)’에 수록된 ‘하이웨이 스프린트(Highway Sprint)’의 ‘첫 음’을 연주하자, 객석엔 미묘한 웅성거림이 감지됐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꽂히는 오후 4시의 소요산이 그제야 잠에서 깬 것처럼 보였다. 클래스가 다른 ‘살아있는 전설’의 등장이었다.

한국 ‘밴드음악의 산실’이자 실력파 음악인들의 ‘양성소’였던 곳. 동두천 미8군 부대의 음악 역사를 이어 1999년 처음 열린 ‘동두천 록페스티벌’이 최근 3년 만의 대면 공연으로 관객과 만났다. 지난 9월 24~25일 양일간 열린 ‘2022 동두천 록페스티벌’은 밴드 경연대회와 공연을 함께 열며 ‘록 정신’을 이어가고자 했다. 무대엔 최희선 밴드를 비롯해 UK 퀸(UK QUEEN), 로맨틱 펀치, 스트릿건즈, 크랙샷, 롤링쿼츠, 스프링스 등이 출연, 시원한 록 음악을 원한 관객들의 갈증을 달래줬다.

2022 동두천록페스티벌 무대를 꾸민 기타리스트 최희선 [최희선 밴드 제공]

■ 4분 같은 40분의 공연…살아있는 ‘전설의 증명’·‘클래스의 입증’

올해 동두천 록페스티벌 ‘최고의 명장면’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자신의 밴드와 오른 무대였다. 이날 최희선은 개인 앨범에 수록된 곡은 물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록 메들리, 정통 블루스를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들려줬다.

40분의 공연은 불과 4분처럼 느껴질 만큼 몰입도가 높고 압도적인 무대였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듯한 ‘하이웨이 스프린트’로 시작한 연주는 묵직한 사운드에 예사롭지 않은 날갯짓으로 날아오르는 ‘나비’로 이어졌다.

최희선은 국내에선 이례적으로 기타 연주 음반을 두 장이나 냈다. 그의 솔로 음반들은 ‘기타리스트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곡으로 채워져있다. 2016년 발매한 ‘매니악’은 그간 최희선을 따라다닌 ‘면도날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연주, ‘정통 록 기타리스트’, ‘대한민국 기타의 살아있는 역사’ 등등 숱한 수사의 증명같은 음반이었다. 세 번째 곡으로 등장한 이 음반의 타이틀곡 ‘매니악’은 빈틈없는 칼박자로 완벽주의 최희선의 연주가 객석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며 관객을 휘어잡았다.

2022 동두천록페스티벌 무대를 꾸민 기타리스트 최희선 [최희선 밴드 제공]

‘몸풀기’라기엔 시작부터 압도적이었다. 연달아 등장한 세 곡은 삽시간에 관객의 혼을 빼놨다.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본색을 드러내자, 누가 봐도 ‘록 마니아’를 자처한 복장과 행색의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뛰쳐나와 ‘형님, 사랑해요’를 외쳤다. 사실 최희선은 독특한 팬덤을 가진 기타리스트다. 제2의 최희선을 꿈꾸는 MZ세대 ‘기타 키즈’부터 그의 음악 역사와 함께 해온 3040 세대, 중장년 세대까지 함께 하고 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더로 약 30년, 프로 음악인으로 활동한지 45년이라는데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외모로 인해 여성 팬도 상당수다. 이날 역시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 국적의 열광이 함께 했다.

무대에서 이어진 록 메들리는 세대, 국적을 초월해 관객들을 대동단결한 무대였다.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으로 시작한 록 메들리는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 마룬 파이브의 ‘디스 러브(This Love)’,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 등 다수의 곡으로 구성됐다. 세계적인 록 명곡 사이에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가 들어간 것도 인상적이었다. 최희선의 긴 음악 역사의 가장 중심에 자리잡은 음악이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으로 구성한 메들리였다.

2022 동두천록페스티벌 무대를 꾸민 기타리스트 최희선 [최희선 밴드 제공]

록 메들리가 이어지는 동안 외국인 관객들은 대수롭지 않게 가방 안으로 던져둔 ‘기타리스트 최희선’이라는 응원문구가 적힌 수건을 주섬주섬 꺼내들며 함성을 질렀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미군 관객은 “한국에서 K팝이 주류 음악이라 이런 록 사운드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최희선을 통해 진짜 록을 만난 기분이다”라며 “오프닝 세 곡은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굉장한 연주 실력에 반했다. 세계적인 명곡으로 구성한 록 메들리를 이렇게 완벽하고, 원곡을 뛰어넘는 연주를 들려주는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며 감탄했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프랭크 마리노(Frank Marino)의 ‘아임 어 킹 비(I’m A King Bee)’와 ‘백도어 맨(Back Door Man)’이었다. 록과 정통 블루스에 자신의 뿌리를 두고 있는 최희선은 11분간 이어지는 두 곡을 통해 소요산 광장을 거대한 블루스 클럽으로 만들었다. 독일에서 온 기타 연주가는 “이 곳에서 프랭크 마리노의 곡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너무나 멋진 음악인을 발견했다”며 감탄했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소요산까지 찾아온 한 무리의 관객들은 “진짜가 나타났다. 이게 진짜 록페다”라며 열광했다.

기타리스트 최희선의 공연은 그 유명한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무대다. 이날 무대는 같은 장비로 구성된 록페스티벌에서 다른 밴드와는 차별되는 유달리 압도적인 사운드의 공연이었다. 최희선을 따라다니는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명성을 확인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공연을 마치고 이어진 팬사인회에는 100여명의 관객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뒤늦게 ‘입덕’(특정 장르나 스타에게 빠져 마니아가 되는 것)한 늦깎이 팬덤이 만들어지는 자리였다.

2022 동두천록페스티벌 무대를 꾸민 기타리스트 최희선 [최희선 밴드 제공]

■ 45년 기타 외길의 증명…후배 음악인들의 이정표

무대 위에선 기타, 드럼, 베이스로 단출하게 구성된 3인조 밴드의 화력이 돋보였다. 최희선밴드는 기타리스트 최희선을 주축으로 드러머 강호, 베이시스트 허인녕으로 구성돼있다.

강호는 직장인밴드로 활동해온 음악인으로, 현재 용인에서 드럼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 밴드의 영웅이다”라며 “2017년 (최희선) 형님을 처음 만났다. 연주를 유심히 봐주신 형님의 부름을 받고 오디션을 거쳐 음악을 배우며 밴드의 멤버로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희선은 지난 5년간 직장인 밴드 출신 강호를 혹독하게 트레이닝 시켜 한 무대를 만들고 있다. ‘완벽주의 기타리스트’로 정평이 나있는 최희선에게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을 버텨내는 사람도 드물다. 강호는 “나름대로 드럼을 치며, 음악을 해왔는데 형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매순간 느꼈다”며 “형님에게 중간은 없다. 모든 면에서 오로지 1과 0만 존재하는 완벽을 추구하시기에 트레이닝 과정이 굉장히 힘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건 내가 갈 길이 아니라 생각해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다”며 “나 자신은 물론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과 싸워 이겨내야만 했다. 지금 이렇게 형님 곁에서 음악을 할 수 있고, 많은 것을 배우며 버텨낸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최희선 밴드의 기타리스트 최희선, 베이시스트 허인녕, 드러머 강호 [최희선밴드 제공]

허인녕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공연 실황을 처음 보고 기타리스트 최희선을 존경하게 된 ‘최희선 키즈’다. 원래 기타리스트이지만, 최희선 밴드에선 베이스를 치며 음악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다. 최희선은 “록 베이시스트는 피크 연주가 많아 기타리스트가 연주하기에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허인녕 역시 “12년 전에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과 공부가 되는 분이다”라며 “기타를 오래 치다 다른 파트에도 관심이 생겼고, 몇 년 전부터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소리를 찾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희선은 단 한 번의 무대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시간의 연습 과정을 거친다. 강호는 “형님은 완벽한 준비를 통해 대중에게 음악의 힘을 보여주고, 대중의 에너지가 다시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한다”며 “항상 철저한 준비가 돼있어야 하기에 매일 연습 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허인녕은 동두천 록페스티벌 무대를 앞두고 “마지막 연습을 마친 뒤 선생님께서 ‘우리 준비는 이게 끝이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실력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며 “‘네가 여지껏 해온 것이 너 자신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지금도 잊지 않고 새기고 있는 말이다”라고 했다.

2022 동두천록페스티벌 무대를 꾸민 기타리스트 최희선 [최희선 밴드 제공]

최희선이 지나온 모든 과정은 오늘의 최희선을 만든 역사였다. 이날의 공연 역시 지난 45년간 오로지 ‘음악 외길’을 걸어온 ‘기타 거장’ 최희선, ‘살아있는 전설’ 최희선의 증명과도 같았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는 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인들에겐 너무도 혹독하다. 전 세계를 K팝이 호령하는 시대에 공존하는 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잔혹하고 메마른 음악 터전 위를 힘들게 걷고 있다. 씨를 뿌려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음악적 다양성은 사라지고, 세션은 존재하나 기타리스트는 멸종을 고하는 시대에 최희선은 후배 음악인들에게 이정표와 같은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밴드의 일원이면서 솔로 연주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음악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건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다.

여전히 아쉬운 것은 다양한 무대의 부재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선 갓 스무 살의 산타나와 일렉 기타의 전설이 된 지미 핸드릭스가 태어났다. 지금 한국의 록페스티벌은 록은 사라진 ‘장르 혼종’의 무대가 됐다. 저마다 관객 확장과 다양성을 기치로 내걸지만, 도리어 다양성은 외면한 무대가 되고 있다. 소박하게나마 1회부터 ‘정통 록’을 지켜온 동두천 록페스티벌은 그런 의미에서도 일견 반가웠다. 제 2, 제 3의 최희선이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하반기에도 록 기타리스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무대는 기다리고 있다. 최희선 밴드는 오는 11월 12일 KBS아레나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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