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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제 넘어 교육·해외진출 발판…세계 재즈 지도에 대한민국 표시”
인재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
19회 맞은 국내 음악축제의 맏형
비 오면 잠기는 섬…‘축제의 도시’로
전 세계 57개국ㆍ6000여명 음악가 찾아
재즈 세계지도에 대한민국 자라섬 표시
올해로 19회를 맞은 한국 음악축제의 맏형 자라섬제즈페스티벌은 비만 오면 잠기는 외딴 섬을 축제의 도시로 만들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비만 오면 잠기는 외딴 섬. 황무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잣의 고장’은 지난 19년 사이 ‘축제의 성지’가 됐다. 2004년 열린 첫 회에도 비는 폭포처럼 쏟아졌다.

“첫회 첫날 공연에 꽤 많은 관객이 왔어요. 가평에 지하철도 다니지 않던 시절, 재즈가 대중화되지 않아 그게 어떤 음악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모두가 깜짝 놀랐고 신기해했어요.”

첫날의 감동이 축제의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둘째 날부터 비가 내려 대부분의 행사를 줄였다. 인재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총감독(57·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은 “지금 생각해보면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돌아봤다.

“3000명의 사람들이 빗속에서 공연을 보며 춤을 췄어요. 그 사람들과 그날의 광경을 죽을 때까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마이너리티 장르’였던 재즈는 해마다 자라섬의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올해도 자라섬의 계절은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지난 시간을 딛고, 다가오는 20주년을 바라다보는 페스티벌이다. 강산이 두 번은 변하는 시간의 길이는 곳곳에서 목격된다. 출발 당시 추석 2주 전 열었던 축제는 가을 태풍으로 10월로 옮겨갔다.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해지는 자라섬의 10월 밤은 기후변화로 점점 따뜻해졌다. 유례 없는 감염병의 시대를 지나오고 맞는 올해의 축제는 지난 1일 시작, 전 세계에서 찾은 32팀의 재즈 음악가들과 관객들과 함께 ‘부활’ 중이다. 인 감독은 “지난 2년을 보내며 사람들의 마음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며 “이제 새로운 축제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주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며 “‘자연, 가족, 휴식, 그리고 음악’을 주제로 정체서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제공]

■ ‘한 발’ 앞서 마이너리티 장르로 꽃 피운 섬

재즈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이너리티 장르’였다. 인 감독은 “전 세계 역사에서 비주류 흑인 문화가 주류 사회로 점프한 것은 딱 두 번이 있었다”고 했다.

“1920년 빅밴드 시절 재즈가 주류 음악이 됐어요. 다른 한 번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왔을 때였어요. 당시 청년들의 록앤롤 문화가 점프했죠. 일종의 전복의 순간이에요. 그런 면에서 재즈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음악이에요.”

그 이후로 재즈는 단 한 번도 주류였던 적은 없었다. 인 감독은 그 시간동안 오로지 재즈 한 길을 걸었다. 그가 재즈 관련 일을 해온 것은 1995년부터였다. 공연 기획 에이전시로 시작해 재즈 전용 공연장(딸기 극장)을 차렸다. 1000번이 넘는 공연을 했고, 20여장의 음반을 제작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칭이 공연계의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긴다’는 황무지에서 시작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인 감독의 ‘실패의 역사’가 쌓아온 결과였다. 어둑한 공연장 안에서 듣던 재즈를 야외로 가져왔고,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도전했다.

“이 일을 하고 난 뒤에 금방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왜 재즈 음악축제를 하지 않았는지. 돈이 안 되니까 그런 거더라고요.(웃음)”

1회 때 세 명의 스태프로 ‘자급자족’하듯 시작한 축제는 대한민국 음악 페스티벌의 ‘큰 형님’으로 존재한다. 계절마다 이어지는 숱한 음악 페스티벌이 해마다 거창한 주제를 내걸지만,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주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자연, 가족, 휴식, 그리고 음악’이다.

대한민국에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는 드물다. 인재진 자라섬음악페스티벌 총감독은 “대다수의 음악축제는 특정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1회 때부터 가족들이 함께 올 수 있는 축제를 열어왔다”고 말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제공]

“대한민국에서 하는 축제와 행사가 그 해의 테마를 이야기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얼마나 표출하고 귀결될까요. 어떤 면에선 기획을 위한 기획이 되는 상황이 너무나 많다고 봐요. 기둥을 흔드는 나뭇잎 같은 것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되더라고요.”

대한민국에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는 드물다. 지금의 음악축제는 ‘젊음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20대를 타깃으로 한 EDM, 워터밤 페스티벌이 대세로 자리했다.

인 감독은 “대다수의 음악축제가 특정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1회 때부터 가족들이 함께 올 수 있는 축제를 열어왔다”고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가족을 많이 이야기하는 사회는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개인과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죠.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최고의 가치는 가족이라고 이야기해요. 자라섬이 추구한 가치와 방향성이 한 발 앞서 잘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제공]

■ 교육의 기능·해외진출 발판…정체성 지킨 ‘지속가능한 축제’

지난 19년 사이 음악환경은 너무도 달라졌다. 재즈 음악은 여전히 비주류이고, K팝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너무도 기형적으로 변해갔다. K팝 이외의 장르는 해가 다르게 변두리로 밀려났다. 음악계의 다양성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도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이름뿐인 록 페스티벌, 이름만 남은 재즈 페스티벌이 숱하고, 해마다 생겼다 이듬해 사라지는 음악 페스티벌이 너무도 많다.

인재진 감독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축제, 한 번에 끝나는 축제가 아닌 다음해에도 이어질 수 있는 축제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재즈’ 페스티벌의 정통성과 가치만을 앞세운다면 진입장벽이 높았겠지만, 재즈가 아닌 ‘음악’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도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더 많은 관객들을 포용할 수 있게 했다.

“재즈는 잘 모르지만,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재즈를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굉장히 환영할 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 같은 큰 음악 페스티벌은 새로운 음악과 예술적 체험을 하게 하는 교육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재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제공]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긴 시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57개국에서 6000여명의 음악가가 찾았고, 지금까지 2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다녀갔다. 한국에선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유럽에서 먼저 주목받은 음악가들을 과감하게 소개하고, 다양한 나라와 교류하며 지난 시간의 역사를 쌓았다. 이 과정에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국내 음악가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교류예요.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엔 한 나라를 집중 조명하는 포커스 프로그램이 있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 나라의 재즈 음악신과 교류하고, 그 채널을 통해 우리 아티스트가 해당 나라에 가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하고 있어요. 페스티벌이 가진 또 다른 기능인 거죠.”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 함께 자라섬은 명실상부 ‘축제의 섬’이 됐고, 가평은 ‘축제의 도시’로 자리하게 됐다. 기차만 다니던 지역에 전철이 들어온 것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역사엔 하나의 변곡점이 됐다. 관객들의 접근성이 쉬워진다는 것은 더 많은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결과 가평에선 재즈페스티벌과 같은 음악 축제가 중요한 관광산업으로 작동한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자라섬재즈페스티벌만큼은 지켜가야할 자랑스러운 축제”로 자리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열망은 이제 20회를 바라본다. 올해 축제를 끝내면,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그 때부터 다음 일 년을 준비한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생긴 이후 대한민국에서 야외 음악 페스티벌, 공연예술 페스티벌이 생길 수 있는 동력이 자라섬에 자리했어요. 자라섬제즈페스티벌은 재즈라는 세계 지도에 대한민국을 표시했다고 생각해요.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역시 스위스 몽트뢰나 캐나다의 몬트리올재즈페스티벌처럼 20년, 30년이 지나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화자산으로 기능하리라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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