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융 당국이 자국 은행 건전성을 거듭 강조하며 실리콘밸리은행(SVB)발 금융 불안에 대해 시장을 안심시키고 나선 가운데,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3일(현지시간) 은행 시스템 스트레스가 미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진은 매사추세츠주 한 SVB 지점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고객들의 모습 [AP]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미 중소은행을 중심으로 불거진 금융 리스크가 다른 경제 부문들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23일(현지시간)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은행 시스템에 대한 스트레스가 다른 부문과 미국의 경제 전반으로 번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금융·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은행 시스템 안전성을 거듭 자신하고 있는 금융 당국자들의 발언과 달리, 당국이 추가적인 혼란 없이 현재의 혼란을 억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무디스의 지적이다.

실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각각 기자회견과 의회 청문회에서 미 정부의 신속한 조치가 SVB 파산발 은행권 위기 확산을 막았다고 자평하며, 자국 은행시스템 건전성을 거듭 자신했다.

이날도 옐런 장관은 하원 세출위원회 소위에 출석해 “우리가 취한 강력한 조치들로 미국인의 예금은 안전하다는 확신을 줬다”며 “확실히 우리는 필요한 경우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은 은행 위기가 또 다른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이 가시지 않은 분위기다. 이와 관련 무디스는 미국의 은행 리스크가 다른 부문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할 수 있는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금융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리스크 회피 심리가 퍼져 은행들이 신용 제공을 줄이는 경우다. 무디스는 이를 동시다발적 리스크를 현실화시키며 가장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시나리오로 꼽았다. 보고서는 “올해 내내 금융 여건은 계속 긴축적이고 성장은 느려지면서 이미 신용 문제를 가진 다양한 부문과 기업들이 리스크에 직면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SVB처럼 곤경에 빠진 은행들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민간 기업과 공공 단체들로 위기가 전염되는 경우로, 해당 은행들과 예금, 대출 등 거래를 해왔거나 이 은행 채권 또는 주식을 보유한 기업들을 통해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 무디스 측의 설명이다.

또한 무디스는 마지막으로 정책 결정권자들의 실수로 은행 문제가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시나리오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당국이 인플레이션 대응에만 신경쓰느라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여기에 포함된다.

실제 전날 연준은 최근 은행권 불안에도 불구하고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인플레이션 대응이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임을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미 정부 당국이 금융권 위기 대처에 대체로 성공할 것이라는 게 기본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즉각적이고 포괄적인 예금 보호에 나서지 않으면 중소은행들의 추가 파산과 경제적 피해 등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경고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월가 헤지펀드의 큰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대표는 “예금 출혈을 멈추려면 일시적인 시스템 전반의 예금 보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전날 옐런 장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모든 은행 예금 보호하는 포괄적 보험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