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주(州) 투산에서 발생한 가브리엘 기퍼즈(민주당ㆍ40) 연방 하원의원 피격 사건으로 미국이 큰 충격에 빠진 가운데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제러드 리 러프너(22)가 최근 수년 사이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과격한 성향을 띄게 됐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또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을 백인 우월주의 및 반(反) 이민 성향으로 알려진 단체의 연관 가능성에 대해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프너, 최근 과격 성향=러프너의 대학 동기인 통 샨은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여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샨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질문을 마구잡이로 했다”면서 “범인이 그였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다른 동급생은 낙태와 관련된 한 수업 도중 러프너가 “테러리즘에 대해 얘기했고 유아를 살해하는 것에 대해서 웃으면서 얘기했다”며 “우리는 충격을 받아 그를 쳐다봤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러프너와 대수학을 함께 들었던 린다 소렌슨(52)은 지난해 6월1일 동기들에게 이메일로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이 하나 있었다”면서 “마약을 하고 있는지 그저 산만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겁이 났다”고 전했다. 소렌슨은 교수가 그에게 강의실에서 나갈 것을 주문했으나 러프너가 거절했다면서 “부디 그가 빨리 학교를 그만두길 바라며 자동발사 총기를 들고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反이민ㆍ백인우월주의 집단과 연관성 조사=수사 당국은 러프너와 백인 우월주의 및 반(反)이민 성향으로 알려진 단체와의 연관 가능성에 대해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백인 우월주의 단체 ‘신세기재단’이 펴내는 잡지 ‘미국 르네상스’의 사이트를 살펴보고 있다. 이와 관련, 러프너가 여러 차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반정부, 반유대주의적인 표현들이 포함돼 있다고 극단주의 조직 감시단체인 ‘남부빈곤법률센터(SPLC)’가 분석했다. 기퍼즈 의원은 최초의 애리조나 주 유대계 하원의원이다.
한편 총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던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은 여전히 중태이나 긍정적인 징후를 보이고 있다며 ‘조심스럽지만 희망적’이라고 치료를 맡고 있는 투산대 의료센터가 AP통신에 밝혔다. 기퍼즈 의원은 손을 꽉 잡아보라는 등의 간단한 지시에 대해 반응하고 있으며 이는 “뇌가 매우 고도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의료진은 말했다. 그러나 정확한 피해 정도 및 향후 장애 가능성 등을 가늠하려면 앞으로 수 주 이상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의료진은 덧붙였다.
▶투산 사망 9살 소녀는 ‘희망의 얼굴’ 출신=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숨진 6명의 희생자 가운데 크리스티나 그린(9)은 9ㆍ11 테러공격이 있던 날 태어나 ‘희망의 얼굴’로 선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은 집 근처에서 있었던 지역구 의원의 행사에 참석했다가 변을 당했다. 온몸으로 총탄 세례를 막아 부인을 살리고 숨진 더윈 스토더드(76) 부부의 사연 역시 주위를 숙연케 하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테러범의 실탄 재장전을 저지한 용감한 여성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마 카운티의 클레런스 듀프니크 보안관에 따르면, 사건 당시 러프너가 권총에 장전돼 있던 실탄 31발을 다 쏜 뒤 새 탄창을 장전하려 할 때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여성이 러프너로부터 탄창을 빼앗았다고 말했다. 덕분에 주춤하는 사이 남성 2명이 러프너를 제압해 더 큰 참사를 막았다는 것이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