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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그런데 빠져든다
‘무대가 좋다’ 6번째 작품 ‘대머리 여가수’
이오네스코 대표적 부조리극

안석환 각색·연출·출연 1인3역

무대디자인 임옥상

의상디자인 이상봉 화제

비일상적 상황 통해

삶의 공허함 드러내



“일주일은 7일이고 일, 월, 화, 수, 목, 금, 토의 순서로 돼 있다.” “천장은 위에 있고 바닥은 밑에 있다.” “서씨가 서씨 부인의 남편이면 서씨 부인은 서씨의 부인이다.”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은 서씨가 신문을 읽고 있다. 오늘 먹은 저녁식사 메뉴와 루마니아 식 요구르트에 대한 이야기. 의미는 알 수 있지만 이해는 할 수 없는 대화가 서씨 부부 사이에 오간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열거하지만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 다르게 다가온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는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믿는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실은 대단히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하다고 믿었던 이오네스코 식 웃음을 선사한다.

연극 ‘대머리 여가수’는 이오네스코가 1938년 전쟁의 불안 속에서 출판사의 교정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이 쓴 첫 번째 희곡이다. 1950년 5월 프랑스 파리의 녹탕뷜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파리 생 미셜 거리 위제트 극장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현대 부조리극의 선구자로 꼽히는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가 ‘무대가 좋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다. 악어컴퍼니와 나무엑터스, CJ엔터테인먼트가 공동 기획한 ‘무대가 좋다’ 시리즈는 개막작 ‘폴포러브’부터 ‘클로져’ ‘프루프’ ‘트루웨스트’ ‘아트’까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잇는 부조리극의 대표작 ‘대머리 여가수’는 작품의 선정뿐 아니라 각색과 연출, 무대와 의상에서도 독특함이 돋보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출연부터 각색과 연출까지 모두 맡은 배우 안석환의 활약이다. 소방대장으로 무대에 서는 안석환은 첫 연극 연출작으로 ‘대머리 여가수’를 택했다. 안석환은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관객들이 공연에 참여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며 “연극적 상상력과 무대의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각색까지 맡은 안석환은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영국의 중산층인 스미스 부부와 마틴 부부를 한국의 서씨 부부와 마씨 부부로 바꿔놓았다. 나라가 바뀐 만큼 식성도 자연히 달라진다. 원작의 영국식 샐러드와 물 수프와 감자튀김은 미역국과 고등어조림, 김치찜 그리고 감자볶음으로 바뀌어 식탁에 오른다. 


안석환을 지원 사격하기 위해 나선 멤버들도 화려하다. 임옥상 화백이 무대 디자인을 맡았고 의상은 이상봉 디자이너가 책임진다. 간결하면서도 굵은 선이 돋보이는 무대에 배우들은 한국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여기에 고재경 마이미스트가 참여해 광대들의 살아 있는 움직임으로 무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각 분야의 거장들이 뭉쳐서 만든 무대는 모든 비일상적인 상황 이후의 웃음,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일상의 깨달음이란 이오네스코의 의도를 그대로 전한다. 김성기와 최광일, 정은경과 정세라 등 대학로 연기파 배우들이 극에 힘을 보탠다.

“내 눈에 우스꽝스러운 것은 특정한 사회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 전체다”라는 이오네스코의 말이 어떤 모습으로 시공간을 넘어 다가올지 주목된다. 연극 ‘대머리 여가수’는 3월 31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윤정현 기자/ h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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