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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생 200주년 맞아 되살아나는 리스트는
말러가 탄생과 죽음으로 지난해(1860년)에 이어 올해(1911년)를 관통한다면 쇼팽(1810~1849)은 지난해, 올해는 리스트(1811∼1886)다.

‘피아노의 귀신’ ‘피아노의 파가니니’ ‘교향시 창시자’. 리스트에겐 여러가지 현란한 수식이 따라 붙지만 리스트는 음악사에서 그 이름 자체로 무게감을 갖는다. 균형을 깨는 끊임없는 확장으로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었고 명연주자에 안주하지 않는 작곡가로서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작품번호가 붙지 않은 방대한 그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선율을 남겼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 리스트의 작품 세계와 그를 기념하기 위해 예정된 무대를 찾아가 본다.

▶화려한 기교 뒷편 깊은 리스트의 작품 세계=리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누구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던지고 양복 옆자락을 튕기며 의자에 앉는 시작부터 굳게 다문 입과 차가운 표정으로 치는 손가락은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젊은 시절 리스트의 독주회는 늘 성황을 이뤘다. 여성 팬들은 환호하다 못해 기절하기도 했다고 한다. 화려한 기술과 쇼맨십은 청중을 열광케 했고 새로운 피아노 연주의 개념을 보여준 연주가로 인정받았다. 

지용 리스토마니아

베토벤의 제자이자 피아노 교본의 자자인 체르니에게 교습을 받고 빈에서 연주회를 한 열살 무렵 당시 한 신문은 리스트를 “구름속에서 떨어진 헤라클라스”라고 표현했다. 그의 연주를 직접 본 베토벤은 “제 2의 모차르트”라고 했다.

하지만 연주의 기교와 잘 알려진 ‘헝가리 광시곡’이나 ‘초절기교 연습곡’ 같은 곡은 그의 일면일 뿐. 진보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음악 정신을 가진 그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다.

1848년에서 1861년 바이마르에 머물 당시 그는 지휘자로서 무려 44편의 오페라를 바이마르 궁정극장 무대에 올렸다. 피아노 선율과 관현악이 어우러지는 ‘피아노 협주곡’ 두 편과 ‘파우스트 교향곡’ ‘단테 교향곡’ ‘전주곡’ 등 교향시(시적인 내용을 교향곡적인 형식에 담아낸 낭만주의 시대 새롭게 등장한 장르)도 만들었다. 

백건우

그의 초상화는 차갑고 이지적인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파리 사교계에서 급속한 성공을 거둔 그의 주변엔 다양한 예술가들이 함께 했다. 그들과의 교류로 리스트는 장르를 넘나드는 풍성한 영감을 주고 받았다. 요제프 단하우저는 ‘피아노를 치는 프란츠 리스트’에서 파리의 한 살롱에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를 그렸다. 베토벤의 흉상을 향하고 있는 리스트 주변엔 조르주 상드와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와 로시니, 파가니니까지 있다.이 그림 속엔 없지만 리스트의 친한 친구인 쇼팽은 전혀 다른 성격과 연주 스타일로 리스트와 비교돼 왔다. 쇼팽은 힘이 넘치는 리스트를 부러워 하면서도 그의 연주는 좋아하진 않았다고 알려진다. 쇼팽은 “그의 음악엔 독이 들어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쇼팽 탄생 200주년에 이어 올해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섬세한 쇼팽과 선이 굵은 리스트도 비교해볼 수 있다. 

손열음

▶오늘의 무대 위에서 되살아나는 리스트는
=지난해 11월 독주회에서 리스트의 곡을 연주했던 지용은 3월 앙코르ㆍ 공연으로 전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이끄는 실내악 그룹 앙상블 디토의 신예 피아니스트 지용은 지난해 10월 데뷔 앨범으로 ‘리스토마니아(Lisztmania)’를 내기도 했다.

한 작곡가를 파고드는 집중력으로 잘 알려진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올해 리스트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오는 6월 19일과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스트 곡만으로 연주회를 하는 것. 아예 연주 타이틀이 ‘백건우, 그리고 리스트’로 기대를 모은다. 백건우는 지난해 7월 샤를 뒤투아의 지휘로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이기도 했다. 6월의 연주 프로그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대욱

백건우에 이어 6월 26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가 예정된 독일 피아니스트 마르틴 슈타트펠트도 프로그램에 리스트의 ‘바흐의 모티브에 의한 변주곡’을 포함시켰다. 최근 발매한 독일 낭만주의 걸작들을 담은 앨범 ‘도이체 로만틱’엔 브람스, 슈만과 ‘바흐의 모티브에 의한 변주곡’뿐 아니라 리스트가 편곡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도 담겼다.

9월부터는 금호아트홀에서 리스트의 선율이 이어진다. 피아니스트 이대욱(한양대학교 교수)는 9월22일 ‘전원과 자연’,10월13일 ‘소나타의 진화’,11월10일 ‘반영과 투쟁’연주회에서 베토벤의 ‘전원’‘소타나 30번’ 등과 함께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제1년’‘소나타 b단조’ 등을 들려준다. 손열음은 10월27일 ‘리스트 에튀드와 쇼팽 에튀드’,11월24일 ‘리스트 소나타와 슈만 판타지’,12월29일 ‘리스트 편곡 작품’으로 리스트를 되새긴다.

국내에서 연주자들이 리스트를 기리는 무대를 선보일뿐 아니라 그가 연주와 작곡활동을 주로 했던 독일에서도 리스트의 음악과 그의 삶을 돌아보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리스트
작센 지역 드레스덴 주립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교향악단, 드레스덴 음악 축제, 드레스덴 카를 마리아 폰 베버 음악대학은 성 마리아 교회와 젬퍼 오페라 하우스에서 여러 차례의 연주회를 계획하고 있다.

튀링겐에서는 바이마르 고전주의 양식의 계승자인 리스트를 주제로 ‘위버리스테트(Ueberlisztet)’ 축제가 6월21일부터 7월9일까지 열린다. ‘프란츠 리스트-바이마르의 유럽인’이라는 전시회도 바이마르에 있는 리스트 박물관에서 진행된다.

윤정현기자/ h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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