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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록의 신화’ 레드 제플린 탄생부터 해체까지…
예수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데 말이 필요할까. 대중음악 팬들에게 레드 제플린도 그러할 것이다. ‘록의 신화’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아버지’ 같은 깃발을 내걸지 않아도, 비행선은 이미 대중음악사의 성층권에 솟아 있다.

여기 주홍색 책이 있다. 보컬 로버트 플랜트가 포효하는 흑백 사진을 제외하고는 ‘레드 제플린’(을유문화사)이라는 한영문 제목과 빨간 배경색이 표지의 전부다. 성서 같다.

책은 레드 제플린의 역사를 500페이지 분량에 깨알같이 담았다. 밴드가 결성된 것은 1968년이지만, 전신격인 야드버즈가 태동한 1963년 5월부터 1980년 12월의 해체 선언에 이르는 제플린의 ‘풀 스토리’를 17개 챕터에 연대기 순으로 펼쳤다.

점잖은 ‘기타 도인’ 제프 벡이 지미 페이지와의 경쟁심에 무대 위에서 쇼맨십을 펼치는 광경, 소음 수치를 재러 나온 지방 공무원을 불법 음반업자로 오인해 패대기친 해프닝, 존 본햄(드럼)과 투어 매니저가 사무라이 검을 휘두르며 도쿄 힐튼호텔 객실 둘을 박살내고 복도 전체를 난도질해 평생 호텔 출입금지 딱지를 받은 사건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가 흥미진진하다.

이런 기행과는 달리 레드 제플린은 음악을 대할 때만큼은 어떤 밴드보다 치밀하고 엄숙했다. 그들이 희대의 명반과 숱한 명곡들을 잉태해 발전시켜나가고, 앨범 콘셉트를 잡기 위해 치열하게 머리를 싸맨 과정들 역시 적나라하게 담았다.

지은이 키스 섀드윅(Keith Shadwick)은 프로 뮤지션 출신답게 음악 자체의 치밀한 구조적 분석에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Black Dog’의 변칙 박자와 복잡한 악곡을 설명하는 데 2쪽을 꼬박 할애할 정도다.

대곡 ‘Stairway to Heaven’은 4쪽이다. 저자는 이들 곡을 설명하기 위해 프리재즈(오넷 콜먼), 블루스(머디 워터스), 아방가르드 록(프랭크 자파), 포크(도노반) 등 다양한 장르와 뮤지션을 끌어들인다. 각 악기 파트의 미묘한 움직임과 조화를 풍부한 음악 지식으로 분석하고 평가했다.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옛 서사와 신비주의에 심취한 플랜트, 인도음악과 클래식 등 방대한 음악적 영향을 창조적으로 녹여내는 페이지, 리듬과 톤에 천착해 영민한 밴드 지향 연주를 한 존 폴 존스(베이스, 키보드), 악동이지만 파워 넘치고 기술적으로 완벽한 플레이를 펼친 본햄 등 4명의 록신(rock 神)들의 이야기는 제프 벡, 에릭 클랩턴, 지미 헨드릭스, 존 레넌 등 당대 영웅들의 ‘양념’과 섞여 ‘록의 구약성서’를 방불케 한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읽는 것도 괜찮다. 당시의 낡은 사운드가 종이에 누운 활자에 OST로 작용해 생생한 다큐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초반 야드버즈의 히스토리가 지루하면 중간께를 펼쳐 그들의 전성기부터 만나보는 것도 방법이다. 간간이 번역체의 건조한 문체가 걸리고, 간혹 저자의 집념 어린 육성 인터뷰나 참고문헌 발췌가 서로 동어반복되긴 한다.

레드 제플린 환자이거나 머리맡에 놔두고 조금씩 읽을 사람에게 적극 추천할 만하다.

임희윤 기자/ 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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