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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화려하게 돌아왔다. 한동우 전 신한생명 부회장. 야인이 된 지 1년8개월 만이다. ▶관련기사 22면
1948년 부산 출신인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는 서울대(법학과) 졸업 후 1971년 서울신탁은행에 입행한 후 신용보증기금을 거쳐 1982년 신한은행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창립 주역들이 흔히 얘기하는 말로 뼛속까지 신한맨이다. 은행 입행 후 한 내정자는 인사부장, 종합기획부장, 개인고객본부ㆍ신용관리 담당 부행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신한의 차세대를 이끌 ‘4룡’으로 불리며 조직 내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은행장 자리는 동갑인 신상훈 전 사장에게 넘어갔고 2002년 신한생명을 맡아야 했다. 6년간의 사장, 3년간의 부회장을 끝으로 신한의 울타리를 나왔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4룡 중 가장 먼저 은행장 경합에서 탈락했지만 그는 이제 곧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오른다. 그에겐 5개월간의 신한 내분 사태에 대한 종결자 역할이 맡겨졌다. 쉽지 않은 과제다. 상황도 간단치 않다.
2002년 은행장 경합 당시에도 신 전 사장을 밀었던 재일동포 주주들이 이번에도 앞을 막아섰다. 신한금융의 모태인 재일교포 주주들의 지원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의 특성상 한 내정자의 입지는 ‘절반’이 깎인 채 출발하는 셈이다. 이를 의식한 듯 한 내정자는 회장 내정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후보자 중 재일교포 주주들과 가장 긴 교분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라며 소통에 자신감을 보인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라 전 회장과의 관계 재설정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러시아 대통령 메드베데프를 본다. 푸틴에 의해 러시아 최고지위에 올랐지만 그는 푸틴 충성파 각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한 내정자의 ‘홀로서기’ 과정이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신한 회장으로서의 진정한 파워는 조직의 융화와 안정에서 나올 게 분명하다.
그와 반대편에 섰던 신 전 사장쪽 인사들을 포용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그는 “형님 부모 선배 같은 마음으로 끌어안겠다”면서도 “분파주의가 계속되면 조치가 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분파주의는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타파될 수 있다. 끌어안는 일은 힘이 있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신창훈 기자/chunsio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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