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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를 뒤흔든 재난에도 인간은 위대했다
“그 두려움과 끔찍함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건물들이 이쪽 저쪽으로 기울어져 폐허가 된 현관들이 엉망진창으로 쌓여있는 것을 바라보는 공포, 건물 더미에 깔려 묻히거나 불에 타서 예닐곱 구씩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시체 더미들을 바라보는 공포, 이것은 세상의 종말이었다.”

부와 성취의 향내로 화려함을 뽐내던 리스본이 1755년 11월 1일 아침,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한 모습을 한 생존자가 증언한 것이다. 그로부터 250여년이 흐른 지구촌 여기저기서 비슷한 재난이 이어지고 있다. 불과 7년 전, 크리스마스 다음날 인도양 10개국을 휩쓴 쓰나미는 25만명의 사망자를 내며 현대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규모 9.15의 해저지진이 4분여간 지속됐지만 경보시스템은 없었다. 그러나 최첨단경보시스템도 이번 일본 대지진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는 데 두려움은 크다. 지구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가. 일본 대지진을 보며 세계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지만 재난은 한편으론 대처하는 방법을 진화시켜왔다는 점에서 학습효과가 있다.

리처드 험블린 런던대 환경연구소 연구원이 쓴 ‘테라’(미래의창)는 지구를 휩쓴 역사상 4대 재난에 대한 생생한 육성을 담은 기록이자 인간이 어떻게 재난에 도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과학발전사다. 리스본의 대지진은 2개의 주요 지각판인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 경계에서 특히 활동이 활발한 아조레스-지브롤타 파쇄역에서 두 판의 경계가 상습적으로 충돌하고 정체되다 터져나왔다. 리스본 지진은 지진에 대한 인식을 신의 징벌에서 자연현상으로 인식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지진의 근대적 인식의 출발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기도가 아니라 인간의 창의력이라는 관점이 등장한다. 지진의 원인규명을 놓고 과학자뿐만 아니라 철학자들의 논쟁, 재난 피해자들을 위한 각국의 국제구호 활동의 양상과 논란 등이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1946년 하와이 힐로 쓰나미는 마침내 재난에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공동대응하기 위한 관측시스템을 갖추는 첫 시도를 낳았다. 기후학자로서 저자의 경험과 연구가 토대를 이루고 있지만 이 책의 미덕은 과학보다 앞선 구전형태로 내려오는 민간의 지혜와 직감을 높이 평가한 데 있다. 하와이 민속설화에 나오는 쓰나미에 대한 풍부한 일화와 물결의 모습에서 해일의 전조를 알아채는 방법 등 이를 존중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험블린의 맺음말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울림이 크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자연현상을 예측하는 뛰어난 장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자연재해로 인한 위협에 처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기적으로 상기시켜줄 때만 그 장비들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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