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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대지진> 한일관계 역사적 전환점...새로운 100년의 첫장 열다
“이번 일을 통해서 양국이 더욱 가까운 이웃이 되리라 확신한다(이명박 대통령)”

“한국 측 지원은 외국의 지원 중 첫 번째로, 일본 국민이 감동하고 감사하고 있다(간 나오토 일본 총리)”

무겁게 내려앉은 역사의 더께 한 겹이 씻겨 내려가고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가 몰고온 자연의 대참화 앞에 ‘한국이냐, 일본이냐’ 하는 옹색한 대립은 없었다. 열도가 흔들리던 날, 정부는 가장 먼저 구조대를 급파했다. 시민단체와 국민들, 재계, 한류 스타까지 가세한 온정의 물결은 대한해협을 건너 열도에 전달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8일 일본 대사관을 방문해 애도의 뜻을 전한 데 이어, 21일 라디오ㆍ인터넷 연설을 통해 일본의 재난 극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19일 일본 교토(京都)에서 열린 제 5차 한ㆍ일ㆍ중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한ㆍ일 두나라 외교장관은 독도와 교과서를 둘러싼 긴장과 대립의 그늘 대신 대지진 참사에 따른 피해복구와 구조지원에 손을 굳게 맞잡았다.

일본 대지진이 반도와 열도를 동(東)으로 이동시킬 때, 한일 두 나라는 과거사의 빗장을 열어 마음으로 서로를 오간 것이다. 민감한 한일관계를 뛰어넘어 "간빠레 닛폰(힘내라, 일본)" 소리가 한국에서 공공연하게 울려퍼지고, 이에 대한 반감이 없었던 것은 초유의 일이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수조차 없던 일이었다.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연간 1만여명에 불과하던 사람들의 왕래가 500만명에 이르고, 교역액이 2억달러에서 900억달러로 늘어난 두 나라는 이번 일본 대참사를 계기로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이미 일본 대중문화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있고, 열도에는 한류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것도 한 요인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그동안 한국, 일본 모두 개별 국가 중심적인 접근을 많이 해 온 반면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공통된 고민은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 이라며 “이번 대지진 참사는 인간안보적 사건이며 21세기형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한국이나 일본 모두 민족주의가 강한 측면이 있지만 (이번 지진 사태가) 양국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줄 것으로 본다” 면서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이 훨씬 부드럽고 친절하고 이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자하는 생각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일본 대지진은 ‘가깝고도 먼’ 갈등의 줄타기를 해온 양국 관계에 망치 한 방을 내려친 일대 사건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양국에 놓은 민감한 외교현안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청산 문제, 교과서와 독도 문제는 미해결된 상태 그대로다. 양국 지도자들이 새로운 100년 미래의 주춧돌을 놓자고 다짐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조정된 한일간의 정서적 공감대가 민감한 외교현안을 상호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독도문제나 조만간 발표될 일본의 교과서 검정 결과가 실망스럽게 나오더라도 우리로서는 이 문제를 당장 강하게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면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하려는 자세가 양국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춘병ㆍ안현태기자@madamr123> 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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