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을 한달여 앞두고 바람 잘 날없는 여권이 신정아 ‘폭로’ 자서전이라는 또 하나의 대형 돌발악재를 만나 심각한 내홍에 빠졌다. 초과이익공유제 발언과 ‘분당을’ 재보선 출마 뜸들이기로 여권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정운찬 전 총리가 신씨의 글을 통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내 친이계에서 동반성장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총리를 ‘재신임’하겠다고 밝힌 바로 그 날(22일), 신 씨가 기자회견장에 나와 정 전 총리를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찍음으로써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청와대와 당 모두 곤경에 빠진 형국이 됐다.
청와대는 일단 정 총리가 외풍에 굴하지 않고 책임있게 자리를 지켜줄 것을 내심 바라고 있다. 이는 청와대내의 보편적 정서라기보다는 이 대통령의 강한 의중이 반영된 의견으로 해석된다.
정 전 총리가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범국민추진위원장 자격으로,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김윤옥 여사의 명예위원장직 수락 행사에 참석함으로써 이같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대통령의 뜻(동반성장 책임지고 이끌어달라)이 전달된 만큼 정 총리의 거취에 대해 청와대가 더 이상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이 아니다” 면서도 “동반성장은 국정가치를 담은 공정사회의 대표적인 정책이기 때문에 흔들림없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초과이익공유제 발언으로 한차례 벽에 부딪친 정 전 총리가 폭로 자서전으로 도덕성 시비까지 휩싸인 상황에서, 그가 위원장직을 이어간다 하더라도 동반성장위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가뜩이나 재계에서 볼멘 소리를 내고 있는 데 위원장까지 거취 논란에 휩싸이면서 많이 당혹스럽다” 면서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차원의 기구라고는 해도 총리 출신의 위원장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현 상황에서는 위원회의 동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 돌발악재를 만난 한나라당은 불씨가 어디로 번질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입을 굳게 닫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당혹감을 넘어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정 전 총리의 분당을 출마 문제로 가뜩이나 지도부가 사분오열 된 마당에 그의 도덕성이 여론도마에 오르면서 ‘선거 전패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내 안상수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 등 정 전 총리 영입파의 입지도 크게 위축됐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당 핵심 당직자는 “정 전 총리가 신속하게 거취를 결정하고 분당을 공천도 다른 후보로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개인 사생활에 관한 문제를 야당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겉으로 봐선 여당의 악재가 분명하지만 신씨 사건이 참여정부 당시 구 여권 핵심 인사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들춰봐야 득이 될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춘병ㆍ심형준기자@madamr123> 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