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의 ‘공약(空約) 목록’에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이 추가되면서, 2011년 한국사회가 ‘표(票)퓰리즘’의 망령에 사로잡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신공항 공약을 백지화하면서 정부는 헛 돈 낭비를 막았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선심성 공약이 부른 지역갈등과 이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고, 국정 동력은 크게 훼손됐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환심을 위해 선심성 포퓰리즘(populism) 공약을 남발하고, 유권자들은 거기에 환호했던 4년전 선거판의 후유증을 지금 심각하게 겪고 있는 한국사회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지식인들에게 정도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신공항 계획은 애초 경제적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유권자 4명 중 1명이 사는 영남의 표심에 호소한 현 정부의 대표적인 무리수 공약이었다. 이미 예고된 불발탄이었고 비극이었던 셈이다. 대통령이라는 목표를 위해 질주하던 유세 당시에는 신공항 공약이 ‘당선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 약속을 백지화하면서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을 바꿨다. 여기에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말 뒤집기가 가져온 지역 갈등과 사회비용과 같은 무형의 손익은 빠져 있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는 “국책사업은 국가가 하는 사업으로 그것에 합당하는 필요가 경제적 효율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면서 “경제성이 있으면 민간이 하지 왜 국가가 하냐”고 반문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할 때도 선거 당시의 입장을 바꾸어 “후회스럽지만 하나를 쪼개서 자꾸 하면 국가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본심을 뒤늦게 드러냈고, 과학비즈니스벨트는 “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며 말을 바꾸었다. 공약을 뒤집을 때마다 “선거가 가까워지니까 말이 바뀌었다(세종시)” “선거 유세 때는 충청도에서 표를 얻으려고 제가 관심이 많았겠죠(과학벨트)”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표심을 위한 공약에 관한 한, 이전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쌀 개방 불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농민 부채 탕감,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등이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이런 고질적 표퓰리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물론 사회의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정치평론가들도 “신공항 백지화는 더 이상 ‘표퓰리즘’에 표를 던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메니페스토(참공약 실천하기) 운동을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면서 “선거 이후보다 선거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유권자들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일방적으로 약속하고 또 일방적으로 이를 철회하는 지금의 형태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면서 “미국에서도 ‘포크 배럴(pork-barrelㆍ이권법안을 둘러싼 정치게임)’이 많지만 서로간에 이해관계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기제가 발달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신공항 공약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 등 향후 선거에서 제1의 적은 달콤하지만 위험한 유혹 ’표퓰리즘’이 돼야 함을 엄중히 말하고 있다.
<양춘병ㆍ이상화 기자@madamr123> 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