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에 따르는 부작용에
과잉 대응은 개혁 망친다
재학생 1만여명 관리는
누가 해봐도 만만찮을터
카이스트의 서남표식 개혁이 올 들어 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자살로 풍전등화다. 이들의 자살 이유가 주로 학점 미달자에게 징벌적 수업료를 부과하고 전 과목 영어 수업을 하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 총장은 12일 국회에서 이 점을 집중 추궁받고 진퇴 시비에 휩쓸렸다.
이 와중에 한 고교생이 일간지에 투고한 독자의 편지가 눈길을 끈다. 요지는 왜 카이스트대학의 자살만 갖고 문제 삼는가, 200명이 넘는 중고생이, 또 경찰청 집계로 230명에 이르는 전국 대학생이 작년에 자살한 사실은 잊었는가다. 이런 잣대라면 확실히 이번 카이스트 사태는 불공정하다. 더욱이 작년에 우리나라 총 자살자 수가 1만5300여명으로 34분마다 한 사람씩 자발적으로 이승을 떠난다는 현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자살한 학생 가운데 우울증 등 기타 이유가 있다면 이 역시 카이스트 개혁과는 다른 문제다.
그런데도 국회를 비롯 사회지도자들의 입방아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얼까. 한마디로 개혁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개혁은 우리 삶의 미래를 보다 낫게 하기 위해서 취해진다. 생산성과 형평성을 키우며 보다 투명해진다는 것이다. 개혁 추진자는 역사적 성가도 높일 수 있다. 카이스트가 지난 1984년 세워진 배경도 당시 대학 풍토 갖고는 글로벌 이공계 인재를 배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천편일률적인 대학 교육의 개혁이었다. 과학고ㆍ영재고 조기졸업생이나 전국 수능 1% 이내 학생에게 입학 기회를 주고 이들에게 전액 수업료 면제와 기숙사 제공 등 특혜를 부여한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개혁이었다.
운영 결과 부진하다는 판단 아래 2006년 미국 MIT공대 서남표 교수를 총장으로 초빙, 이번에는 카이스트 자체 개혁을 과감히 추진한 것이다. 보다 빨리, 더 능력 있는 국제적 인재를 배출하려면 학생 간 학점 경쟁과 영어 수업이 불가피하다고 보았고 교수들에게도 세월 가면 테뉴어(정년 보장)가 되는 관행을 깨버렸다. 그야말로 죽기 살기 식 학생과 교수의 경쟁을 촉발시킨 것이다. 그 성과가 서서히 드러나려는 찰나 올 들어 연이은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개혁으로 생긴 영재 대학에서 운영 면의 개혁 바람을 일으켰으나 역풍이 몰아쳐 카이스트는 지금 개혁과 퇴행의 기로에 섰다.
학점 경쟁과 영어 수업에 따른 학내 삭막한 풍경이 확실히 청춘의 꿈을 키우는 학창은 아니다. 이를 교육의 참모습으로 바꾸자는 개혁 반대 소리가 만발한다. 이들의 논리는 4개쯤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첫째, 전면 영어 수업과 학점 미달자 징벌적 수업료 부과는 한국 실정에 안 맞는다는 것이다. 둘째, 시기상조론이 나온다. 이것도 안 통하면 셋째, 취지는 좋지만 방법이 틀렸다고 한다. 지금 힘 있는 기득권층의 반대 목청은 주로 방법론에 쏠려 있고 시기상조론이 뒷받침하는 양상이다. 이 반대론을 다 포괄하면 결국 개혁으로 기득권자들이 자꾸 피해를 보게 되며 현실은 그 숫자가 아주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반대론을 수용할 경우 카이스트가 과연 바라는 바 세계적 이공계 대학으로 클 수 있을지 미지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이는 카이스트 설립 목적과는 다르다. 특히 수업료 전액과 기숙사 비용까지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처지에 카이스트 학생에게 베푸는 온정은 기타 학생들에 비해 너무 후하다. 불공평하다. 그렇다면 대접받는 만큼 더 공부에 매진해야 마땅하다. 아니면 자살이 아닌 타 대학으로 전학을 가면 된다. 상담실 정도 더 확충해서 고민을 덜어주고 교양과목은 한국어와 병행 수업하는 수준으로 타협하기 바라나 개혁 반대 세력은 언제나 목청이 크다. 학교에 개인 기부도 많이 한 서 총장이 버텨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