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제에서 과거 정부와 차별화한 실용적인 업적을 고민 중인 이명박 정부는 최소 10조원대의 ‘통일기금’을 시드머니(대북지원 종잣돈)로 적립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거론됐던 통일국채 발행과 통일세 징수 등은 국민 부담 최소화 원칙에 어긋나고, 정부가 상정한 10년 후의 통일 시나리오를 감안할 때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추후 통일 여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25일 “통일재원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국민 부담이 적으면서도 조기에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며 “국민과 국회 동의를 위해서는 조세저항이나 재정우려가 예상되는 여타 방안보다는 통일기금 적립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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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이어 “통일이 10년 내 이뤄진다고 가정할 경우 현재의 남북협력기금 불용액(연 1조원 규모) 또는 예산 1% 내외(3조원)를 적립하는 방식으로 통일기금을 조성, 최소 10조원 이상을 시드머니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통일 직후 당장 북한 주민의 먹을거리 등을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은 2조~3조원대로 생각보다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통일이 임박해지면 기본 인프라 구축 등 단기자금 수요가 많기 때문에 통일세나 통일국채, 민간 및 국제자본 차입 등도 추가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통일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고 있는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독일도 처음에는 국채를 발행했다가 나중에 세금을 추가로 거뒀는데 독일 통일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급진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남북 통일이 독일처럼 단기에 급진적으로 된다면 이런 독일 사례를 일부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통일재원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해 8ㆍ15 경축사를 통해 첫 언급한 이후 공론화했다.
청와대는 “통일재원의 기본 틀을 마련하는 것은 차기 정부에 물려줄 구체적인 통일유산”이라고 수차례 강조, 집권 후반기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예고해왔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다음달 통일재원과 관련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를 종합해 기획재정부 등 유관부처 협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상반기 안에 정부시안을 확정하고, 오는 9월 정기국회를 통해 이를 법제화한다는 계획이다.
양춘병기자/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