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연기금들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주주권을 강화하겠다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발언이 일파만파다. 곽 위원장은 “우리 경제는 대기업의 거대 관료주의를 견제하고 시장의 취약한 공적 기능을 북돋울 수 있는 ‘촉진자’가 필요한 상태”라고 그 이유를 적시했다. 국민연금의 경우 55조원가량을 국내 주식에 투자,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 등 139개 기업에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적극 행사하면 실제 기업에는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신(新)관치’와 ‘연금사회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발이 거세다.
연기금의 주주권 강화는 세계적 추세다. 기업 가치를 높여 투자수익을 극대화, 가입자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연기금 운용자의 기본적인 책무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대주주와 경영진이 기업 활동을 제대로 하는지 연기금이 철저히 견제하고 감시한다. 이에 비해 우리 연기금은 그동안 권리 행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곽 위원장의 제안에 무조건 반대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제는 외국 사례와 달리 우리 연기금의 경우 정부의 직접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으로 나타난다면 오너 경영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주주권 강화를 논하기 앞서 연기금이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이유다.
재계 역시 반발만 할 게 아니라 왜 이런 논란이 빚어졌는지 냉정히 생각해봐야 한다. 현 정부가 친기업정책을 표방한 것은 투자와 일자리를 늘려 중산층과 서민 경제를 살찌게 하는 따뜻한 시장경제 구현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대기업은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고환율 정책 등에 힘입은 사상 최대 실적에도 신규 투자와 미래 성장동력 키우기에는 인색했다. 중소 협력업체의 사정은 여전히 어렵고, 서민 경제는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 등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정치 권력이든 경제 권력이든 지나치면 역기능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대기업은 자본과 인재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미래 동력을 일구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연기금이 투자한 만큼 주주권 행사를 한다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틀리지 않는다. 좋은 타협안이 나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