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패배 보수엔 충격
경제난에 비판·분노 증가
가치 지키기 ‘외로운 싸움’
숙업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이번 재보선 선거에서 여당이 텃밭으로 여겨진 선거구들에서 패배한 것은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에 충격을 주었다. 여당이 불리하게 마련인 중간선거였고 선거는 우연에 많이 좌우되지만, 그래도 이번 선거는 민심이 흉흉함을 보여주었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 그리 컸는데, 큰 잘못 없이 나라를 이끌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한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거세게 솟구친다. 가난의 원인을 당사자들의 운과 노력보다는 사회의 구조와 정책에서 찾는 경향이 깊어져서, 자신의 처지가 기대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당장 정권을 갈아치우고 싶은 충동을 강렬하게 느낀다. 그들에겐 정권을 바꾸어도 경제 상태가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실은 좌파 정권은 경제를 허약하게 만들리라는 전망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선 그런 정권 교체가 우리 헌법을 충실히 따르는 정당들 사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놈의 헌법”이라고 헌법을 경멸한 노무현 대통령이 세운 반체제적 정책들도, 심지어 북한의 군사적 위협도, 좌파 정당의 집권에 따르는 위험을 일깨워주지 못한다. 그들에겐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발산하는 일이 당장 중요하다. 이런 상황 앞에서 보수 세력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
보수의 과업은 힘들다. 현존하는 체제가, 수많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가장 나은 체제라고 지적하는 일엔 신명이나 보답이 따르기 어렵다. 개인들의 재산권을 바탕으로 삼는 자본주의에 계속 퍼부어지는 비난들에 대응하기는 특히 어렵다.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점점 커지는데, 그것을 합리적으로 줄일 길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의 실패는 이내 눈에 뜨이는데, 시장에 퍼부어진 비난들이 그르다는 것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다른 편으로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기구인 보편적 참정권과 보통선거는 필연적으로 민중주의(populism)를 부른다. 복지제도는 사회안전망의 범위를 넘어서고 세금은 늘어나고 정부의 몫은 지칠 줄 모르고 커진다. 그래서 지친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변호할 의욕을 잃어간다.
2008년에 온 세계를 휩쓴 금융 위기는 사정을 훨씬 어렵게 만들었다. 위기가 워낙 심각했고 자유주의적 처방들이 너무 미흡했으므로, 이번 금융 위기는 자유주의를 뿌리째 흔들었다. 수많은 자유주의의 적들이 즐거워하면서 외친 것처럼, 이번 위기는 자유주의의 오류, 자본주의의 취약함, 그리고 시장의 불안정을 증명했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려면,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늘 소수였고 앞으로도 소수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키려는 노력은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는 것과 비슷하다. 촛불 하나로 어둠을 걷어낼 수는 없다. 우리 둘레의 어둠을 잠시 밀어낼 수 있을 따름이다. 그것보다 많은 것을 이루려는 것은 욕심이다. 그런 욕심을 품으면 쉽게 지친다. 세상의 몰이해와 냉소를 견디려면 자유주의자들은 그런 지적 욕심을 줄여야 한다.
그래도 그 촛불을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리고 나름으로 마련한 초에 불을 붙여 자기 둘레의 어둠을 밀어낼 것이다. 그것보다 큰 보람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