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나 싶었던 망령 부활
정·관·재계 예외 없이 만연
사회 전 분야서 질타 목소리
제도 등 총체적 보완책 절실
한동안 사라졌나 싶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란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모럴 해저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는 형국이다. 모 인터넷 검색포털에 모럴 해저드를 검색해보니 단박에 거의 1만 건가량의 관련기사가 뜬다. 내용도 가지가지여서 ‘모럴 해저드 백화점’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대한민국이 마치 ‘모럴 해저드 공화국’이라도 된 듯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아름다운 신록에도 불구하고 2011년 대한민국의 봄은 오점으로 얼룩지고 있다.
최근 본 모럴 해저드의 극치는 ‘부산저축은행 특혜인출 사건’이다. 영업정지 전날 친인척과 VIP고객들에게 따로 연락해 수백억원의 예금을 특혜 인출해줬지만 ‘금융검찰’로 불리는금감원 직원은 조치는커녕 묵인했다. 파문이 불거진 후 부산의 여야 의원들은 저축은행의 예금 전액을 보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특혜인출자를 밝혀내야 하는 상황에서 면죄부를 주자는 것인지…. 국회의원들은 지난 3월에도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기습 처리해 모럴 해저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유명환 전 장관 딸의 특채에 이어 상하이 외교관 스캔들, 한ㆍEU FTA협정문 오역, 재외공관장의 상아 밀수 사건 등으로 재차 모럴 해저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80.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어찌 보면 가짜환자, 과잉수리비 등 모럴 해저드와 관련이 깊다. 자동차 사고 입원율은 60.6%(2008년)로 일본(6.5%)의 9.5배에 달한다. 보험업계도 모럴 해저드를 비켜가지 못했다. 손보사들이 소비자에 대해 소송을 남발, 이를 민원 대응수단으로 악용하는가 하면 대형 생보사들은 당국의 시정권고도 무시하고 자궁소파수술에 74억원의 보험금을 축소 지급했다.
지방자치단체는 모럴 해저드의 결정판이다. 2010년 정부합동감사 결과를 보면, ‘제 식구 감싸기’ 징계, 특혜채용, 예산낭비, 부당계약 등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지자체가 직접 설립해 경영하는 지방공기업은 지난해 부채가 46조원으로 2006년 말 22조원의 두 배가 넘고 연간 이자만 1조원이 넘지만 매년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기업이라고 예외일까. LIG건설, 삼부토건, 씨모텍, 대한해운 등이 최근 법정관리나 증시퇴출 직전에 기업어음(CP) 발행, 유상증자 등을 통해 수천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는 모럴 해저드를 넘어 사실상 사기다. 또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의 법정관리 신청은 법정관리가 부실기업의 도피처로 악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결혼정보업계에서도 모럴 해저드가 이슈다. 무조건 회원가입만 받고 소개를 제대로 해주지 않거나, 조건이 좋은 남성회원에게는 무료로 여성을 소개해주면서 골드미스에게는 회비만 많이 받고 소개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럴 해저드는 이미 중증에 가깝다. 이익은 기업 대주주가 다 먹고, 손해가 나면 투자자와 국민이 책임지는 지금의 구조는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의 한 전형이다. 모럴 해저드를 조장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은 물론, 사회지도층의 각성에서부터 국민들의 의식 전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dew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