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떨어져 살던 한영씨는 4년이 지나서야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새아버지와 형제들은 한영씨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지만 낯설기만했다. 20년 가까이 살던 터전을 떠나 타국 땅에서 새로운 삶은 시작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 온 후 1년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중국 친구들과 인터넷 채팅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음식도 거의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재료를 사다주면 중국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그럴수록 한국 생활은 더욱 낯설고 어색해져갔다. 지난 1년, 한영씨는 몸은 한국에 있었지만 어울리지 못한 채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가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새아버지의 권유로 지난 3일부터 서울 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서울 무지개청소년센터는 한영씨처럼 한국인과 재혼한 결혼이주여성이 본국에서 데려온 자녀 즉 ‘중도입국청소년’의 한국사회 초기적응을 지원하는 레인보우스쿨(Rainbow school)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0년 시작한 사업으로 현재 서울, 경기도 안산 등 전국 9곳의 대안학교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레인보우스쿨의 운영 목적은 중도입국청소년의 ‘교육공백’을 막는 것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현재 국내 중도입국청소년은 5726명이다. 하지만 이 통계는 가족합류비자(F1)로 입국한 경우만 포함하는 탓에 공식 통계 추산이 불가능한 불법체류자 자녀까지 포함하면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레인보우스쿨 교육프로그램은 4개월 과정으로 주 5일 전일제다. 3만원 정도의 급식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료가 무료다.
오전에는 기초생활한국어ㆍ학교생활한국어 등 언어 수업을 비롯해 수학ㆍ사회 등 일선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과목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텃밭 가꾸기, 태권도, 방송댄스, 체험활동 등 다양한 예체능수업을 한다. 지역별 전문자원봉사자를 통해 1:1멘토링 서비스 등 프로그램 사후관리도 실시된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6개월 전 한국에 와 안산 레인보우스쿨 ‘들꽃피는학교’에 재학 중인 조선족 김선화(16ㆍ여)양은 “학교생활이 매우 재밌다. 태권도랑 방송댄스 같은 예체능 활동이 매우 즐겁다”며 “중국 소설을 한글로 번역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하루 빨리 한국의 중.고등학교로 진학해 한국인 친구들처럼 일반적인 학교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우 무지개청소년센터 다문화역량강화팀장은 “이 곳에 오는 아이들은 다들 마음속에 뿌리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심리적 지원을 하는 등 방치 기간을 줄이기 위한 구조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진ㆍ양대근 기자@ssujin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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