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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을 판다, 진심을 판다 … 해외의 사랑받는 기업들
한 여성이 어머니가 쓰실 신발을 인터넷 업체 ‘자포스(Zappos)’에 주문했다. 하지만 그녀가 물건을 받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얼마 뒤에 그녀에게 e-메일 한 통이 날아온다. 구입한 신발에 문제는 없는지, 마음에 드는지를 묻는 자포스의 메일이다. 그녀는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구두를 반품할 수는 없는가”라고 되물었다.

자포스에서 곧바로 답장이 왔다. “우리가 택배직원을 집으로 보내 반품 처리를 해드리겠다.”

그리곤 다음날 그녀에게 한 다발의 꽃이 배달돼왔다. 카드에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자포스가 보낸 것이었다.

<이시즈카 시노부 저. ‘아마존은 왜 최고가에 자포스를 인수했는가’의 일부 요약>

21세기는 ‘사랑받는’ 기업의 시대다. 엄청난 이익을 내는 ‘위대한’ 기업들을 넘어 고객과 직원, 협력사와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낸다. 이런 기업은 고객에게 감동을 준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화제가 된 라젠드라 시소디아 미국 벤틀리대 교수의 저서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기업들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그는 책에서 “사랑받는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넘어선 더 큰 이상과 목적을 가진다. 주주뿐 아니라 고객과 직원, 협력업체, 사회 등 모든 이해당사자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설명한다.

많은 회사가 ‘어떻게 더 많은 이익을 낼까’에만 골몰할 때, 사랑받는 기업들은 ‘회사가 구현해야 하는 철학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인터넷과 SNS로 일반인들도 기업활동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는 세상이다. 기업의 ‘진심 어린 고민’은 다양한 형태로 고객들에게 알려진다. 제품과 서비스 자체는 물론 기업 철학, 기업 내부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은 호감과 감동을 느끼고 소비와 구매라는 방법으로 기업에 ‘사랑’을 표시한다.

트레이더 조(Trader Joe’s). 미국 서부에만 34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유기농 식료품 체인점이다.

여기선 철저하게 믿을 만한 제품만 판다. 방부제, 트랜스지방, MSG, 향료 등이 전혀 없는 제품들이다. 농민들과 장기 계약으로 생산한 유기농 농작물을 직접 사들여 자체 브랜드로 판다. 가격도 경쟁사들보다 싸다. 그렇다 보니 고객들의 충성도는 아주 높다. 지난해에만 60억달러가 넘는 이익을 냈다.

미국인들에게 트레이더 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면 ‘맛있다’ ‘싸다’는 답변보다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본의 ‘주켄공업’은 국적, 성별, 학력을 무시한 ‘선착순 채용’ 하나로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가 됐다.

환경문제 해결에 막대한 자금을 쓰는 친환경 의류기업 ‘파타고니아’, 제트기 4대를 전세내 1200명의 직원을 한꺼번에 플로리다 해안의 섬으로 여행을 보낸 ‘조던스 퍼니처’, 크리스마스 전날 전산망이 고장나자 “물건은 공짜로 가져가고 대신 그만큼 자선단체에 기부하라”고 했던 ‘홀푸드’ 등은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철학을 기업활동으로 연계시켜 고객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낸 회사들이다.

최근 화두인 사회적 소비도 ‘사랑받는 기업’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계기다. 프랑스계 생수업체 볼빅의 ‘1L for 10L’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볼빅은 지난 2008년 유니세프와 손잡고 ‘자사의 생수 1L를 사면 아프리카에 음료 10L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벌였다. 결과는 대성공. 진정성과 사회적 책임 등에 공감한 고객들이 뜨겁게 화답하면서 볼빅의 매출은 전년 대비 131%나 늘었고, 브랜드 이미지도 높아졌다.

일본에도 사랑받는 강소 기업들이 많다.

대표적인 기업이 유통업체인 ‘OK스토어’다. 다른 경쟁업체들이 규모의 경쟁에 주력할 때 ‘고객에게 없으면 안 되는 가게, 전철의 역과 같은 가게’를 표방하면서 고객들의 사랑을 모은다.

OK스토어는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을 많이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시장지배력과 홍보력이 부족한 2~5위의 중소기업 물품을 전력을 다해 홍보하고, ‘대신 더 싸게’ 공급한다. 유통회사가 중소기업의 판매채널 역할을 하면서 상생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OK스토어엔 ‘어니스트 카드’가 자랑이다. 과일, 채소, 수산물 등 각종 신선식품의 진열대에는 어김없이 어니스트 카드가 붙어 있다. “오늘 판매하는 수박은 일조량 부족으로 당도가 부족합니다. 가급적이면 다른 상품의 이용을 추천합니다.” “6월 21일부터 발포주 가격이 인하됩니다. 급하지 않으시면 그 이후에 사시는 것이 유익합니다.”

물건을 팔아치우는 데 급급하지 않고 솔직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면서 신뢰와 사랑을 얻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의수와 인공유방 등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신체보정기기를 만드는 회사인 나카무라 브레이스는 대기업은 거들떠보지 않는 단 한 사람의 고객(환자)을 위한 제품을 만들면서 세계적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회사가 됐다. ‘좋은 걸 만들면 반드시 고객은 온다’는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의 류게쓰과자점 본점은 유명한 케이크 제품을 오랜 기간 세 조각에 500엔씩 팔고 있다. 일본의 평균 가족이 세 명이고, 주부가 큰 고민 없이 쓸 수 있는 돈이 500엔이라는 판단에서다. 최고급 재료와 섬세한 제과기술이 들어간 이 케이크를 먹기 위해 매일 과자점 앞에는 행렬이 늘어선다. 본점뿐만 아니다. 홋카이도 내의 40개 지점에도 매일 고객이 넘쳐난다. 손님들이 사러 오는 것은 빵이나 과자가 아니라 마음과 철학이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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