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이 다시 남태령을 넘는다. 이번엔 여의도행이다. 지난해 8월말 취임했으니 9개월만이다.
갑작스런 사의 표명이었지만 예견됐던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뒷맛이 더 씁쓸하다.
장관급 개각이 발표된 이달 초 박 차관은 느닷없이 지경부 기자단과의 만남을 청했다. “과천 공무원이 여의도에 신경 쓸 겨를이 있나”며 “임명직 공직자는 임명권자에 따르는 게 기본 도리”라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곧이어 작심한듯 앞의 발언과는 방향이 전혀 다른 의미심장한 말을 쏟아냈다
“변화나 도전에 주저하거나 두려워한 적 없다”면서 “여건과 상황 변화가 오면 개인적 결단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출사표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일을 많이 벌려놨는데 수습하면서 내실을 챙기는 차관이 왔으면 좋겠다”고 후임 차관에대한 희망사항까지 얘기했다.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사의 표명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취임 때 ‘남태령을 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몸은 남태령을 넘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늘 국회가 있는 여의도를 향해 있었던 사실이 증명됐다.
짧은 차관직 임기동안 많은 사건이 있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선을 넘어서며 유가위기가 닥쳤다. 정유사, 주유소의 석유제품 가격 책정 문제를 놓고 여론이 들끓었다. 올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까지 터졌다.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놓고 국민 불안은 극에 달했다.
그때마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 차관은 “해외 출장기간이 62일, 두 달을 넘는다”며 “22개 나라를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유가와 원전 문제를 제쳐놓고 그는 아프리카, 중남미 등 출장과 해외사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국내 에너지 산업에 크게 기여했다 할만한 ‘작품’은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지경부 2차관은 에너지 정책 전반을 관할하는 자리다. 석유, 가스, 원자력 등 에너지 산업에서부터 해외자원개발 사업까지 모두를 아우른다. 지금 우리나라는 필요한 에너지의 97%를 수입해 쓴다. 지경부 2차관은 에너지라는 한국경제의 ‘생명줄’을 책임지는 중책이다. 경력 관리 삼아 거쳐가는 직위가 되선 안되는 자리다. 그런 여유를 부릴만큼 우리나라 에너지 사정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이번 경험으로 남태령 너머 인사권자가 깨닫길 바랄 뿐이다.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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