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국책사업 입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과 국론 분열이 끝이 없다. 엊그제 발표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만 해도 그 후유증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유치전에서 밀린 경상북도는 도내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경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을 반납하겠다며 몽니다. 광주는 지역 국회의원들이 관련 예산 지원 중단은 물론 선정 과정에 대한 국정조사를 벼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동남권 신공항 때문에 부산과 대구·경북·경남이 갈라져 사생결단을 벌이는 등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대형 국책사업은 나라 전체에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타당성과 실효성은 있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보고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수시로 급조되기 일쑤다. 정치권 밀실에서 뚝딱 만들어진 공약은 선거가 임박하면 ‘한 건’ 터뜨리듯 발표한다. 정책의 타당성을 검증할 시간도 없다 보니 공약의 적절성을 따지는 매니페스토 운동 역시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겹쳐 있다. 대형 지역 개발공약이 쏟아져나오고 선거 후에는 그 뒤치다꺼리로 온 나라가 흔들리는 전철을 밟을 게 자명하다.
개발공약 남발에 대한 정치권 일각의 자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책사업 선정 갈등을 풀기 위한 법 제정, 공약 외부검증단 가동 등의 방안 검토가 그것이다. 하지만 해법을 정치권에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같다. 막상 선거가 닥치면 승리를 위해서는 하지 못할 약속이 없는 게 정치권의 생리다. 실제 대형 국책사업 공약은 득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16대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는 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어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본인도 “재미 좀 봤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정치권이 지역 개발 공약을 자제하는 것이 공연한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최선의 길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입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대형 국책사업 입지 선정 기준을 엄격히 정해 함부로 공약하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 가령 개발비용의 일부를 지자체가 부담케 하거나 원자력발전소, 고준위방폐장, 쓰레기매립장 등 혐오, 기피 시설을 함께 갖게 하는 등의 원칙을 만들자는 것이다. 공짜 점심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지역주민들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