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왕’ 권혁 씨에 이어 ‘구리왕’ 차용규 씨가 역외 탈세 혐의로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이 작심하고 벌이는 ‘역외 탈세와의 전쟁’ 결과물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차 씨는 카자흐스탄 구리 광산업체를 영국 증시에 상장, 매각해 1조원이 넘는 수익을 거뒀으나 국내 비거주자란 이유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세무당국 시각은 다르다. 그의 가족관계나 출입국 기록을 보면 실질 거주지를 대한민국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조세피난처에 차명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 국내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어 과세 근거가 충분한 만큼 역외 탈세 혐의 입증이 어렵지 않다는 입장이다.
세무당국과 차 씨의 주장이 워낙 팽팽해 어느 쪽이 진실인지 예단하기 어렵다. 권 씨의 경우처럼 차 씨의 세금 탈루 여부는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공산이 크다. 국세청은 차 씨의 탈세 규모가 7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 국민적 관심은 지대하다. 혐의가 입증된다면 차 씨는 단군 이래 최대 탈세범이 되는 셈이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선 안 되지만 세금을 포탈하는 부도덕한 기업인은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세무당국과 사법당국이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밝혀야 할 이유는 많다.
역외 탈세는 특히 죄질이 좋지 않다. 소득세법에는 ‘국내에 거소를 둔 기간이 2년에 걸쳐 1년 이상인 경우 국내에 거소를 둔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 이는 1년의 절반 미만을 국내에 있으면 해외 거주자로 간주해 소득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역외 탈세자들은 이런 법 체계의 허점을 악용, 날짜 계산까지 해가며 교묘히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 차 씨와 권 씨의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란 지적도 있다. 그만큼 역외 탈세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혜택을 다 누리면서,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는다면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이현동 국세청장 취임 이후 국세청은 역외탈세추적전담 태스크포스를 운영하는 등 역외 탈세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 역외 탈세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추적이 쉽지 않은 힘든 작업이다. 그렇더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역외 탈세를 뿌리 뽑기 바란다. 조세정의와 공평과세를 정착시켜야 사회가 바르고 건전해진다. 그게 국세청이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