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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정몽구 회장이 또 한번 실력 발휘할 때
10여년간 눈부신 성장

시기적절한 전략 주효

부품업체 다변화 문제

정회장 혜안 다시 발휘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억세게 운(運)이 좋은 경영자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고유가가 겹치면서 현대ㆍ기아차가 경쟁력을 지닌 중소형 라인업이 빛을 발했다. 중국, 인도 등에 공장을 짓고 나니 신흥시장이 급부상했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 이어 기아차 조지아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자마자 미국 경제가 살아나 지금은 차가 없어 못 팔 지경이다. 러시아가 자국산 차량에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수입차에 대한 관세율을 높이겠다고 할 무렵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을 완공해 현지에서 차량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다. 세계 1위 컨테이너 생산업체였던 현대모비스를 자동차 모듈 전문업체로 탈바꿈시킨 지 10년 만에 자동차부품 모듈화는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부품 국산화율을 끌어올린 덕에 일본 대지진 피해를 피했고,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도요타 리콜 사태는 앞만 보고 달리던 현대ㆍ기아차가 내실을 다지는 반면교사가 됐다. 이 모든 걸 운이라고 한다면 로또복권 1등에 몇 번이나 당첨됐을 정도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2~3년 사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단순히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실력이라고 믿는 사람이 늘고 있다. 운이 반복되면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이다.

국내 자동차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뻔했던 유성기업 파업 사태가 공권력 투입으로 일단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대ㆍ기아차가 핵심부품 서플라이 체인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봇물을 이루는 이유다.

핵심부품 서플라이 체인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은 쉽지만 해결은 만만치 않은 참 고약한 문제다. 완성차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부품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은 필수다. 모두가 알듯이 R&D를 강화하려면 조건이 있다. 해당 업체가 R&D를 수행할 만큼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규모의 경제도 달성돼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피스톤 링을 예로 들어보자. 보통 엔진 하나에 피스톤 링은 3개가 들어간다. 올해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 생산목표가 633만대이니 피스톤 링은 대략 1900만개가 필요하다. 개당 공급가액이 1300원 안팎이라면 전체 규모는 250억원 수준이다. 이를 만약 5개 기업에 쪼개준다면 한 업체당 관련 매출은 50억원을 채우지 못한다. 매출 50억원을 보고 R&D에 집중 투자할 기업이 있을까.

부품공급업체 수를 늘리면 완성차 업체는 좋다. 마음에 안 드는 업체는 언제든 교체할 수 있으니 단가를 낮추는 것도 용이하다. 그럼에도 한두 업체에 물량을 몰아줄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대ㆍ기아차 상황이 어렵게 됐다. 주요 부품 공급처를 무조건 늘릴 수도 없고,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제2, 제3의 유성기업 사태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어서다.

지난 10여년 동안 실력으로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빅3 문턱까지 성장시킨 정몽구 회장. 다시 한 번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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