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주한미군의 폭로로 촉발된 ‘고엽제 매립’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1970년대 경북 왜관 캠프 캐럴에 이어 경기 부천의 캠프 머서 기지에도 화학물질이 매립됐고, 비무장지대에도 고엽제가 뿌려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이 사안의 중요성과 한ㆍ미 관계를 감안, 신속한 진상조사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섰지만 환경오염 가능성에 대한 국민 불안은 여전하다.
주한미군의 국내 토양, 수질 오염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새로 이전하는 기지의 추가 오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주민 피해 차단과 복구를 위한 효율적인 대책 수립도 중요하지만 차제에 근원적으로 오염 가능성을 사전 차단할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바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재개정이다.
양국은 지난 2001년 44년 만의 SOFA 첫 개정에서 ‘미국은 한국의 환경법령을 존중한다’는 문구를 SOFA 합의 의사록에 신설했다. 또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에는 양국 정책에 부합하게 환경관리기준, 정보공유 및 출입, 환경이행실적 및 환경협의에 관한 내용들을 새로 삽입했다. 분명 과거보다 진일보한 조처이지만 구체적인 환경구제 절차나 책임 소재, 소요 비용 등에 대한 세부 내용이 없는 ‘종이 호랑이’일 뿐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환경권 규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이에 상응한 SOFA 재개정이 선결이다. “고엽제 문제 해결 과정에서 현행 SOFA 규정에 미비하거나 부족한 점이 있을 경우 보완하거나 고칠 필요성을 검토하겠다”는 유보적 입장으로 대처할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당장 미국에 재개정을 공식 요구,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기지 및 시설을 반환할 때 원상회복하거나 한국 정부에 보상할 의무를 지지 않도록 규정’한 불평등 독소조항인 SOFA 제4조를 삭제하도록 해야 한다. 환경규제 강제수단은커녕 양국 승인을 통한 환경정보 접근 및 공개 규정은 있으나 마나다.
한국은 이제라도 적어도 미ㆍ독 SOFA처럼 ‘상대국의 환경법규를 준수한다’는 규정을 신설, 환경오염 제거 비용 및 배상 규정의 명문화를 요구하고, 미국 역시 이를 수용해야 한다.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소파(SOFA)’가 한ㆍ미 관계를 승격시키고 공고히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2008년 쇠고기 촛불시위 때와 같은 광범위한 반미 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SOFA 개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