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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 음란물이니까 검증 대충해도 된다고?
처음부터 표현의 자유로 보호될 표현이 있고 보호되지 않을 표현이 있다면 이미 표현의 자유는 훼손된 것이다. 법적으로 금지되는 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어느 표현이 법적으로 금지되는지에 대해 절차와 기준이 엄수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지하는 사유가 예를 들어 ‘음란성’ ‘사행성’이라는 이유로 절차와 기준을 엄수하지 않으면 ‘음란물이니까 음란물인지 아닌지 자세히 보지 않아도 돼’라는 동어반복에 빠진다.
그런데 이러한 동어반복을 통해 게시물이 차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인터넷 게시물들이 별다른 절차도 없이 소위 ‘음란물’ ‘사행행위’라는 라벨이 붙여지고 그 라벨이 붙은 죄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차단되고 있다.
아무리 음란물이라고 할지라도 법이 정한 절차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연쇄살인범도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연쇄살인범도 자신의 죄목을 통보받고 그 죄목의 부당성에 대해 이의제기할 기회를 보장받으며 이에 대한 중립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또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는 영장 등을 통한 법관의 판단 없이는 절대로 기본권을 제한받아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절차를 거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예단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단에 의지하고 절차를 무시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일제시대와 군사독재를 거치며 체험했다. 고문을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조작사건들이야말로 동어반복의 결과물들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동어반복을 차단하기 위해서 음란물, 광고는 물론 허위사실 유포도 모두 표현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포함된다고 한 것이다.
혹자는 ‘누가 봐도 명백한 것은 절차를 조금 생략해도 되지 않는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아무리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유일하게 먹고사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유일하게 자긍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법으로 금지됐던 동성애를 보라. 생각 없이 던진 ‘차단의 돌’이 개구리를 죽일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열린 숨통을 통해서 어렵게라도 경제활동, 문화활동을 영위하려는 사람들을 ‘나에게 명백하니 누가 봐도 명백하다’라는 이유로 절차와 기준을 무시하고 단죄하는 것은 독선적이며 오만한 동어반복이다.
더욱이 각국의 헌법에 ‘표현의 자유’는 명시돼 있고 ‘행동의 자유’는 명시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표현은 그 효과가 그 표현을 들은 사람의 독립적인 행위를 통해서만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행위는 행위 그 자체로 효과가 나타난다. 누군가가 병역의 의무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것과 실제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다르다. 결국 표현은 표현이 가진 여러 가지 순기능(토론을 통한 공동체적 의사결정, 개인의 자아실현, 그 표현을 들을 사람의 알 권리)이 모두 발현되는 동안 규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곧바로 물리적 해악으로 나타날 것이 명백하고 현존한 경우에는 표현도 규제될 수 있을 것이다. 명예훼손, 사기처럼 피해자와 피해가 특정 가능하거나 음란물, 도박물처럼 피해가 표현물에서 곧바로 발생하는 표현들만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표현은 행위와 달리 예외적으로 규제가 가능하니 더욱더 이 독선적인 동어반복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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