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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 낀 아파트 천덕꾸러기 전락
실수요자 위주로 시장 재편

만기남은 물건 철저히 소외

가격도 500만~1000만원 낮아

집주인들 빈집상태로 매매




“요즘 누가 전세를 안고 아파트를 삽니까. 즉시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가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서울 금천구 소재 아파트를 보유 중인 이모씨는 얼마전 급한 마음에 인근 부동산을 찾았다. 현재 전세를 주고 있는 이 아파트를 팔려던 차에 마침 매수자가 나타나서였다. 하지만, 아직 전세 만기까지는 6개월 넘게 남아있는 상황. 전세를 구하다 아예 집을 사려 결심했다는 매수자는 아파트에 즉시 입주를 할 수 있는지를 이씨에게 물어왔지만, 기존 세입자가 쉽게 방을 빼줄리는 만무했다.

이에 대해 공인중개사 유모씨는 “세입자가 만기 때까지 방을 비워주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2년까지 보호를 받는다”며 “설사 방을 비워주는 데 동의하더라도 이사비와 중개수수료를 모두 주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처럼 전세가격이 치솟는 시점에 어느 세입자가 선뜻 방을 비워주려 하겠느냐”며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에서 임대차보호 기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어 ‘전세 낀 아파트’의 거래 실종 현상은 한층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택 매매 시장에서 전ㆍ월세 세입자를 낀 아파트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매매 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즉시 입주가 불가능한 이른바 ‘전세 낀 아파트’는 철저히 소외되는 양상이다.

상황이 이렇자 집을 팔려는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의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지 않고, 아예 집을 비운 채 매물을 내놓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황수찬 에이스공인 대표는 “현재 우리 중개사무소가 보유 중인 빈집 매도 물건만 3개에 달한다”며 “세입자가 입주해 있으면 아예 매수자들이 쳐다도 보지 않는 탓에 집 주인들이 빈 집으로 새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결정적 이유는 주택 투자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과거 ‘전세 낀 아파트’는 전세보증금을 활용하면 실투자금을 줄일 수 있어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통했다.

하지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급감하면서 투자 수요가 사실상 실종되자, ‘전세 낀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도 덩달아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가격의 상승도 ‘전세 낀 아파트’의 소외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전세를 안고 아파트 투자를 하려는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없는 집을 사들여 비싼 값에 직접 임대를 놓는 것이 실투자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세 낀 아파트’의 가격은 ‘즉시 입주 가능’ 매물에 비해 가격이 낮게 형성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 배건환 엔젤공인 대표는 “ ‘전세 낀 아파트’는 입주가 바로 이뤄지는 아파트보다 500만~1000만원 가량 저렴해야 그나마 수요자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정순식 기자/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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