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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초등학교 반장선거만도 못한 한나라당
지난 20여일간 진통을 거듭했던 한나라당의 ‘경선 룰’ 작업이 독단과 폭력의 ‘막장 혈극’을 빚으며 끝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독단은 폭언과 멱살잡이를 불렀고, 결국 원점 재검토 사태까지 가져왔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정당 중 가장 오랜 역사와 체계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한나라당에서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한나라당의 최고의결기구인 전국위원회가 열린 7일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 웃음과 반가움의 인사가 오갔던 회의장 분위기는 일순간에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핵심 쟁점이던 대표 경선 시 여론조사 반영 여부를 놓고 토론을 지켜보던 이해봉 의장이 갑자기 “현행대로 하자”며 의사봉을 두드린 것이다. 이날 참석인원 430명 중 절반이 넘는 266명이 위임장을 통해 자신에게 표결까지 맡겼기 때문에 더 이상의 찬반 토론이나 별도의 투표는 필요 없다는 ‘해석’이 빛난 대목이다.

“짜고 치는 거냐” “완전 사기다” “물러나라” 같은 고함과 삿대질 그리고 멱살잡이까지 불러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중립적인 입장의 당직자들조차 “한나라당 역사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황당해할 정도였다. 한 당직자는 “반대쪽에서 법적 대응을 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라며 “쇄신은 고사하고 망신살이 뻗칠 일만 남았다”고 한탄했다.

지난 7일 전국위원회가 끝난 뒤 회의장 한쪽에 구겨진 채 남겨진 한나라당의 플래카드. 이 플래카드에는‘ 쇄신, 소통, 국민’ 같은 문구들이 가득했다.
망신살은 허술한 당헌, 당규도 한몫했다. 1997년 창당해 올해로 14년 동안 원내 제1당, 또는 집권여당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정당이지만, 위임장의 효력과 유효 범위에 대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든 의결사항을 의장에게 위임한다’는 애매모호한 위임장의 문장 하나에 토론과 설득 그리고 다수결 원칙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설 자리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스스로 쇄신과 변화를 외치며 수차례 토론, 의총, 막판조율 끝에 결실을 눈앞에 뒀던 한나라당의 7월 경선 룰은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위임장을 제출했던 위원들 중 일부는 위임장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같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8일 오전 부랴부랴 비대위원들을 불러모은 정의화 비대위원장은 “초등학교 선거도 안 그런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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