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은행은 우량 대기업 CEO들을 초청해 대출 확대를 위한 프로모션 행사를 가졌다. 자금 굴릴 곳이 마땅치 않자 우량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출세일’ 행사를 벌인 것이다. 이같이 갑과 을이 바뀐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저축은행 사태에다 중견 건설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이 잇따르면서, 돈은 굴려야 하고 신용위험은 낮춰야 하는 은행들의 다급함을 엿볼 수 있는 현상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5월말 기준 은행들의 원화대출금은 7조6000억원 증가했다. 이 중 대기업 대출이 4조4000억원 늘어났다. 9조원이나 증가했던 4월에 비해서는 축소됐지만 여전히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5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서 “운전자금 수요와 은행의 대출확대 노력 등으로 대기업 대출이 비교적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5월중 중소기업 대출은 1조3000억원 늘어 전월(2조5000억원)에 비해 증가폭이 다소 축소됐다. 한은은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등 결제성 대출의 상환이 늘면서 대출증가세가 전월보다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 포함)은 아파트 신규 분양물량 축소로 집단대출이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대출금리 수준과 은행의 대출확대 노력으로 2조5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올들어 주택담보대출은 매달 2조원 가량 늘어나면서 9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은행들이 이달말 기업신용평가를 앞두고 있고 중견건설사들의 연이은 법정관리 신청,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체율 증가 등으로 담보 위주의 대출을 늘리면서 신용 리스크 관리의 고삐를 다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HMC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은행의 신규 대기업 대출 금리는 0.32% 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은행들이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경쟁을 벌인 결과로 풀이된다.
이승준 HMC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이런 현상은 은행들의 기업신용평가가 끝나는 이달말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반면 현재 중소기업 대출 평균금리는 가계대출 금리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 연구원은 “은행들의 대기업 대출이자 마진이 축소되고 있어 우량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3분기 이후부터는 우량 중소기업 대출 위주로 원화대출금 성장의 회복 속도 역시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이날 보고서에서 “은행들의 기업대출이 서서히 성장세로 선회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신창훈 기자/ 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