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을 기치로 내건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이달 말로 활동을 접는다. 여야 정치권이 대검 중수부 폐지, 판검사 비리 수사 전담 특별수사청 설치, 대법관 증원, 양형기준법 4대 핵심과제 논의가 진전이 없어 시한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국회 법사위 차원에서 계속 논의한다지만 추진 동력을 잃은 상태라 극적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법개혁의 좌초는 국회의 무능과 굴욕의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법원과 검찰이 똘똘 뭉쳐 조직적으로 반발하자 국회가 백기를 든 꼴이 된 것이다. 검찰은 저축은행 수사 태업으로 맞섰고, 법원은 대법관 증원을 노골적으로 외면했다. 사법제도를 뜯어고치겠다고 나섰을 때는 이보다 더한 반발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 호락호락 이를 내려놓을 리 만무하다. 끝까지 이해당사자들을 설득시키고, 그래도 어려우면 국민이 위임한 입법권을 과감히 행사해야 개혁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회는 집단이기주의 벽을 넘어설 힘도 노력도 정치력도 없었다.
더 근본적 원인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략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사법개혁은 국민의 편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법질서 구축과 집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방향이 정해지면 좌고우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출발부터가 정략적이었다. 검찰이 정치권에 칼날을 겨눈다고, 법원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한다고 ‘한번 손을 보겠다’는 식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법조계가 반발하면 흔들리고 당리당략에 따라 오락가락하기 일쑤였다. 그런 상태에서 개혁작업이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4대 과제는 무산됐지만 여야는 처리에 합의한 경찰 수사개시권 명문화 등 14개 법안을 책임감 있게 마무리해야 한다. 그 가운데 10년 이상 법조경력자를 법관에 임용하는 ‘법조 일원화’는 4대 과제 못지않은 개혁 핵심 법안이다. 서열과 기수를 중시하는 법원의 강한 반발에도 제도를 도입키로 한 것은 그나마 사개특위가 건진 최대 소득이다. 하지만 전면 시행 시기가 2022년으로 후퇴, 의미가 퇴색했다. 판사 수급 문제를 들지만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필요가 있다. 국민적 합의도 충분한 상태다. 법조계에 또 밀리면 국민은 국회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