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엘리트 장교였던 김영수 소령(해사45기)은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혀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군복을 30일부로 벗었다. 그의 운명은 2009년 10월 해군대학 교관일 당시 모 방송에 출연해 계룡대 근무지원단 납품비리를 고발하면서 격량에 휩쓸렸다. 상부에 문제 제기를 했으나 해결 기미가 전혀 없어 취한 특단의 조치였는데 영관급 장교가 군 내부 비리를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이 처음이라 파장도 컸다.
당시 해군 지휘부와 관련자들은 김 소령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폭로 내용을 부인했지만 수사결과 국민 혈세 6억7000여만원이 줄줄 샜고, 대령급 등 31명이 사법처리됐다. 국민권익위로부터 ‘부패방지부문 훈장’을 받은 김 소령은 각계의 박수를 받았으나 정작 군은 그를 외면했다. 진급은 커녕 “허가없이 방송에 출연했다”며 오히려 징계했다. 방송 직후 교관자격을 박탈당하고 해사 1년 후배가 상관으로 있는 국군체육부대로 발령받는 등 ‘찬밥 대우’를 면치못하다가 결국 전역지원서를 제출, 20년 넘는 군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다. 그는 아직도 명예훼손 등 혐의로 해군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여론이 들끓을 때는 가만 놔두더니 잠잠해지니까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내부고발자는 끝까지 찾아가 응징하고야 말겠다는 것인가.
국방부는 지난해 국민권익위의 38개 중앙행정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31위를 기록, 2009년 7위에서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군이 천안함 피격사건 대응 과정에서 노출한 각종 문제점과 방산장비의 잇따른 결함, 끊이지 않는 방산ㆍ군납비리로 얼룩진 탓이다. 이에 국방부는 지난 27일 김관진 장관 주재로 공직기강확립 대책회의를 열고 ‘일상 감사제’ 도입, 중·소령과 5~7급 공무원까지 재산등록 확대 등 강도높은 대책을 밝혔다. 각 부서 과장 이상 최종 결재권자가 승인하기 전에 감사관실의 스크린을 거쳐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실천을 위한 각론에서 이 같은 의지를 의심케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내부공익신고센터’ 전화를 개설해 제보를 받기로 하면서 반드시 실명으로 하라고 못박은 것이다. 엄격한 계급 서열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에서 실명으로 상관 및 조직의 비리를 제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방부의 이런 행태는 부패척결보다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에 방점을 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외부에 비리가 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그순간 환부는 더 썩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썩은 부위를 드러내고 수술대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하는 대신 내부고발자를 통제함으로써 청렴도 꼴찌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국방부만의 너무 근시안적 사고다. 국방부는 그동안 청렴했는데 최근 단발적인 비리 때문에 ‘비리, 거짓말 집단’용어가 나올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뿌리깊은 부패구조가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볼일이다.
폐쇠적인 군 내부의 구조적 비리는 내부고발자가 아니면 사실 파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물론 투서가 남발되면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투서는 진위를 밝혀 명명백백하게 밝히면 되는 것이지, 설마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으랴”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군은 그런 사소한 부패마저도 용납되서는 안되는 조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자를 감싸안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방부는 앞서 헌병 비리를 제보한 H중령을 처음엔 ‘공익제보자’라며 적극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가 최근엔 ‘투서자’로 바꿔 군 검찰단을 통해 징계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는 내부비리를 제보하라고 권유하면서 속으로는 칼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다. 더군다나 김 소령의 경우처럼 엄연히 사실로 드러난 경우조차 내부고발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군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쫒아낸다면 그건 내부고발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국방부가 구조적으로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내부비리 실명신고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김대우 사회팀장/dew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