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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神의 사도 ‘십자군’…갑옷 뒤 맨얼굴은…결국 인간의 욕망
신의 이름으로 200년간 벌어진 두 종교의 전쟁, 십자군 전쟁에 대해 교과서가 들려주는 얘기는 참으로 삭막하다. 예루살렘 성지순례자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박해에 따른 7차에 걸친 원정과 실패, 이후 교황권의 추락 등으로 대개 요약된다. 그 긴 세월, 전 유럽과 소아시아, 중동지역을 흔들어 놓은 그 전쟁의 도상에서 어떤 일들이 구체적으로 있었는지 사람냄새 나는 얘기는 어디서도 듣기 힘들다.

시오노 나나미가 화석처럼 굳어진 십자군전쟁의 길을 따라간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설렜다. 그만이 찾아낼 수 있는 이면의 풍성한 이야기와 생생한 인물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십자군 이야기’(전3권ㆍ문학동네) 첫 권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십자군의 행로는 마치 땅속에 묻혀 있던 예루살렘으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을 발굴한 것처럼 느껴진다.

발굴의 현장에서 건져올린 것들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 따윈 없다. 그는 전쟁도 마치 일상의 한 부분인 양 일정한 톤으로 편하게 서술해나간다.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들고 시오노 나나미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건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인물들로 이야기를 이끌어간 데 있다. 10만의 민중 십자군을 이끌었던 은자 삐에로를 비롯해 제1차 십자군을 이끈 제후들 등 주요 인물들의 궤적을 하나하나 그려나가는 과정은 마치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는 듯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맛을 준다.

시오노 나나미의 힘은 한마디로 디테일이다. 십자군의 행로와 시간의 정확성, 지리적 이해, 당시 생활과 군의 상태까지 꼼꼼한 재현은 그의 철저한 고증과 확신을 바탕으로 생명을 얻는다. 시오노 나나미다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한 인물의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과 선택, 또 성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앞뒤로 꿰어 보여준 데 있다. 


가령 신성로마제국의 신하인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만의 십자군 참가에 대해 의아해하는 연구자들을 한방 먹이는 독특한 견해는 흥미롭다.

“그 시절 삼십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즉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볼 나이이기도 한 것이다.” 즉 황제의 뜻에 따라 교황을 쫓아내는 데 혈안이 돼왔던 그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역선택을 한 셈이란 해석이다.

이런 시선은 필연과 당위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아니곤 나올 수 없다.

신의 이름을 빌려 십자군전쟁을 발호시킨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 대한 해석도 독특하다. 세포조직과 같은 수도원, 지방주교 등의 정보 네트워크를 이용해 글로벌 세계경영에 나섰다는 것이다.

사료를 대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엄밀한 태도가 곳곳에 녹아있다.

‘십자군 이야기’의 서문격이라 할 수 있는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는 서로 보완적이다. 귀스타브 도레의 정밀하고 아름다운 삽화에 저자가 간단한 해설을 붙인 것으로, 곤경에 처한 그리스도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슬람교도, 십자군의 가장 큰 적, 살라딘의 준수한 모습 등 상식과 다른 100여장의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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