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동 노화랑 20일부터 ‘한국의 자연과 향기’ 展
이상범·장욱진·박수근 등근현대미술 대표작가 9人
‘한국의 미’ 독창적 화풍 눈길
미술교과서를 통해 자주 접했던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근현대 작가들은 우리의 자연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소화했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는 특별기획전이 마련됐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도상봉, 오지호, 이상범, 변관식, 이우환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9명의 작품을 통해 작품 속에 담긴 자연관을 살펴보는 ‘한국의 자연과 향기’전이 20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막된다. 이번 전시에는 쉽게 접하기 힘든 스타작가들의 유화 등 17점이 일제히 내걸린다.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작가마다 작품은 확연히 달라진다. 특히 똑같은 대상을 그려도 동서양에선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 자연을 관찰하고, 해부하는 것이 서양의 자연관이라면 동양에서 자연은 ‘거기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동양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은 자연을 어떤 의도나 목적 없이 직관으로 품는다.
정물과 풍경을 즐겨 그린 도상봉(1902~77)은 전자에 가깝다. 그는 대상을 언제나 다소곳하게 정해진 위치에 놓고, 엄정하게 그렸다. 따라서 지극히 정태적이고 아카데믹하다. 이를 통해 도상봉만의 기품있는 조형세계를 창조해냈다. 반면 장욱진(1917~90)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심상으로 자연 속 삶을 자유롭게 그렸다. 때문에 욕심없는 ‘무념의 경지’를 드러낸다.
마치 소슬바람이 불듯 한국의 자연을 조촐하게 묘사한 청전 이상범의 ‘하경산수’ |
박수근(1914~65)은 어떤가? 그는 화강암 같은 거친 질감으로 궁핍했던 우리의 일상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고목, 도시 변두리의 마을풍경에선 전쟁 직후 궁핍했던 시대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러나 따스한 인간애도 감지된다. 같은 어려운 시기에 작업했음에도 이중섭(1916~56)은 생동감 있는 색채와 선묘 위주의 기법으로 한국의 산하와 어린이를 활달하게 그렸다. ‘단순한 재현 이상의 세계’를 지향한 그림에선 깊은 고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는 이중섭 예술세계를 더욱 깊이있게 만드는 요소다.
한국적 추상화의 개척자인 김환기(1913~74)는 우리 민족이 애용하던 조선백자에 자연을 곁들이며 ‘한국적 모더니즘’을 제시했다. 수많은 점들이 밤하늘 은하수처럼 찍힌 김환기의 점(點)화는 구체적 형상이 없어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이다. 또 오지호(1905~82)는 우리의 자연과 환경에 적합한 조형이념을 추구하며 완성도 높은 회화를 남겼다. 그는 “한국(조선)의 대기는 원근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므로 일본 그림과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빼어난 풍경 및 정물화를 남겼던 오지호의 유화 ‘모란’ |
청전 이상범(1897~1972)은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나지막한 산등성과 농촌을 안정된 수평구도로 그렸다. ‘청전(靑田)양식’을 구축한 그림은 수묵화의 매력을 듬뿍 전해준다. 반면에 소정 변관식(1899~1976)은 둔중하고 거친 필치로 산세와 기암절벽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한편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우환(75)은 측량할 수 없는 자연과 사물의 무한한 상호작용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술평론가 임창섭 씨는 “그동안 ‘한국의 미’는 소박한 것,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소극적 미의식과는 달리 한국 작가들은 자연을 다양하면서도 세련되게 해석했다”고 평했다. 27일까지. (02)732-3558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