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은 ‘액터-뮤지션 뮤지컬’을 표방한 신(新)개념 뮤지컬이다. 해외서는 ‘스위니 토드’나 ‘컴퍼니’ 등의 작품이 액터 뮤지션 방식을 도입해 관심을 받았지만, 국내서는 처음 시도된다. 기존 뮤지컬이 배우의 노래 대사 춤으로 이뤄졌다면, 액터 뮤지션 뮤지컬은 배우의 역량에 (악기)연주를 포함시켰다.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연기와 연주를 오가는 ‘멀티 플레이어’다. 뮤지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음악을 배우가 직접 뿜어낸다는 것은,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치다. 다만, 배우로서 얼마나 연기에 집중력을 보일지가 관건이다.
작품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을 원작으로 했다. 부모를 잃고 어릴 때 꿈인 선원이 되려 결심하는 이스마엘(신지호ㆍ피아노). 거친 외모와 달리 다정다감한 퀴퀘그(이일근ㆍ바이올린). 두 청년은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고, ‘흰고래’ 모비딕을 쫓는 에이헙 선장(황건ㆍ첼로)의 피쿼드 호에 승선해 시련을 겪는다.
새로 시도되는 실험적인 장르의 작품인 만큼, 연출은 기존 알려진 원작을 줄기로 삼았다. 모던하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원작의 분위기가 다양한 음악적 기법으로 표현된다. 이스마엘 역의 팝피아니스트 신지호는 피아노를 통해 고래잡이 선원을 꿈꾸는 소년의 꿈을 표현하며 작살잡이 퀴퀘그 역의 집시바이올리니스트 KoN(이일근)은 신비로운 바이올린 선율로 귀를 사로잡는다.
이들이 지닌 악기는 캐릭터를 상징하는 도구다. 에이헙 선장은 한쪽 다리를 잃은 의족을 첼로로 표현, 퀴퀘그가 든 바이올린의 활은 작살, 클라리넷은 망원경이 된다.
나아가 음악은 인물 간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선율은 이스마엘과 퀴퀘그 간 마음의 벽을 허무는 신비로운 도구다. 때로 파워풀하고 현란한 재즈의 즉흥연주가 펼쳐지기도 하고, 한순간 음악 공연장이 된 듯 무대는 음악으로 꽉 찬다.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극대화한 뮤지컬, 배우와 음악이 하나가 되는 이 작품은 뮤지컬이 ‘보는 것’이 아닌 ‘듣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작품은 자신의 다리를 작살낸 흰고래 모비딕을 잡으려고, 자연에 ‘무모한 도전’을 하는 선장과 이를 따르는 선원들의 항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 ‘평등주의’를 담았다. 일부에서는 ‘흰고래=절대자’로 보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라는 남성주의적인 해석을 내놓는 것과 달리, 조용신 연출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메시지로 풀어낸 것이 흥미롭다. ~8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