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6~7월 한 달여에 걸쳐 25t의 금을 사들였다고 2일 밝혔다. 외환위기 직후 국민들이 모은 금을 매입한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금 보유량을 늘리라는 각계의 주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다 뒤늦게 발동을 걸었지만 상투를 잡은 꼴이다. 값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에서 금을 사들인 까닭이다.
실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언론과 경제전문가는 물론 국회와 감사원까지 나서 금 비중을 늘리라고 권했지만 한은은 꿈쩍 하지 않았다. 유동성 경색 우려가 있고, 투자 수익률이 낮은데다, 가격이 올라 상투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갔다. 각국 중앙은행은 경쟁적으로 금을 사들였고, 금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특히 한은이 금을 집중 매입한 지난달 국제 시세는 온스당 160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까지 올라섰다. 한은의 판단 부족이 아까운 달러를 낭비시킨 것이다. 이는 전ㆍ현직 한은 총재들의 책임이 크다.
한은이 지금이라도 금 보유를 늘리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금값의 등락은 있겠지만 수요 증가 등 장기적으로는 인상 추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안이 하원을 통과, 디폴트 위기를 넘겼다 해도 달러화 약세 가속화는 불가피하다. 기축통화인 달러화 위상이 추락할수록 금 등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반드시 늘어난다. 중국과 인도가 과거 3년간 금 보유량을 급격히 늘린 저변을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국제 금값은 곧 2000달러 선을 넘어 5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 판이다. 하지만 한은의 금 보유량은 아직 멀었다. 이번 매입분을 포함해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시가 기준 0.7%에 불과하다. 70%가 넘는 미국 독일 이탈리아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며, 중국 일본 인도 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의 2~8%에도 크게 모자란다.
금 추가 매입에 한은이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금 투자를 자제했다는 건 외환보유액이나 경제 규모로 볼 때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투자 실패에 따른 책임을 겁내기보다 잘 운용할 인력 확보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소신 있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급변하는 국제 경제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은의 금 투자 실기는 실물자산 운용 전문인력 부족과 무관치 않다. 김중수 총재가 더 이상 우유부단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