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등 세계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방대한 논문 자료를 보유한 SSRN(Social Science Research Network) 같은 웹사이트에서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의 키워드를 가진 자료의 다운로드 수는 초기 2~3년 동안 상위에 랭크될 정도다. ‘포스코의 성공요인’을 분석한 필자의 논문도 외국 저널에서 먼저 제안해와서 게재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외신기자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급상승은 한국 기업의 성공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한국 기업의 성공 스토리는 매우 흥미진진한 취재 대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성공에 대한 사례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기업을 분석하는 ‘틀(framework)’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기업을 대상으로 발달해왔기 때문에 한국 기업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지배구조와 관련, 전통적 경영학 이론을 적용하면 삼성 등 한국 재벌기업의 ‘오너 경영 체제’가 ‘기업 성과’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한국 기업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너무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한국의 대기업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이라고 인정을 해주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미국이나 유럽의 전자제품 코너를 삼성과 LG가 장악하고, 현대자동차가 아시아 및 미국 시장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한 2~3년 전에야 비로소 ‘한국 기업의 성공’에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삼성 TV가 일본 소니와 파나소닉을 제치고 북미 시장에서 수량과 금액 기준 모두 1위를 차지했으며, 삼성 휴대폰이 애플의 아이폰과 치열하게 스마트폰 시장을 다투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0%를 넘어섰다고 하지 않는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국 경제는 프리미어 리그가 아니라 박지성 같은 선수 몇 명 있을 뿐’이라고 평했지만 ‘성공의 경험’은 비록 소수라도 결코 값싸지 않다. 한국적 경영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의미가 깊다. 이는 제2, 제3의 박지성이 한국 축구를 부흥시킬 것이라는 기대만큼 세계적인 한국 기업의 부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7-8월호에 최초로 한국 기업에 관한, 한국인 경영학 교수의 논문이 실렸다. 송재용·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타룬 카나 하버드대 교수와 공저한 ‘삼성 부상의 역설’이라는 논문에서 삼성의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삼성 경영의 핵심은 ‘대기업이면서도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 속도’ ‘다각화와 전문화’ 그리고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의 결합’ 등 세 가지 요인으로 정리했다. 강력한 오너 경영 체제는 ‘스피드 경영’을 가능하게 했고, 특히 빠른 세계 시장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한때 재벌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다각화’가 ‘전문화’와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오히려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 기업의 성공요인에 대한 세계의 관심에 대해, 늦었지만 한국 경영학계가 답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한국 기업의 성공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는 혁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영학계도 할 일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