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SF, 성장, 과학, 사랑이야기
나는 머리가 매우 좋은데다가 공부도 열심히 한다. 크면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거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어른에 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매일 착실히 노트에 많은 것을 기록하고 책도 많이 읽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싶은 것이 많다. 우주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생물이나 바다나 로봇에도 관심이 많다. 역사도 좋아하고 훌륭한 사람의 전기 같은 것도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진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오늘 계산해보니 내가 스무 살이 될 대까지 3000하고도 888일이 남아 있다. 그러면 나는 3000하고도 888일을 나날이 훌륭해지는 거다. 그날이 왔을 때 내가 얼마나 훌륭해져 있을지는 짐작도 못 하겠다.
<펭귄하이웨이>(2011.작가정신)의 주인공 초등학교 4학년 아오야마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처음엔 ‘뭐 이렇게 건방진 꼬마가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읽을수록 ‘이 아이는 나중에 크게 되겠구나’라는 믿음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이 아이가 더없이 사랑스러워진다. 본능적으로 초등학생 행동을 하는 자신을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야’라며 혼내는 주인공의 모습이 입가에 웃음을 불러온다.
세상 모든 일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아오야마가 열심히 실험에 매진하고 있던 어느 날. 주택가 가운데 난데없이 펭귄이 등장한다. 당연히 아오야마의 최우선 연구대상이 된다. 펭귄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때 으레 지나가는 루트를 ‘펭귄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을 따서 연구 제목은 ‘펭귄 하이웨이’가 된다.
이 일에 핵심은 치과의사 간호사 누나다. 이 누나가 펭귄을 만들어 낸다. 어느 순간부터 이 연구가 펭귄 때문인지 누나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누나를 만날 때마다 가슴을 빤히 쳐다보는 주인공이 응큼하면서도 귀엽다. 다음은 소년의 여성 가슴에 대한 생각이다.
젖가슴은 수수께끼야 하고 나는 요즘 끊임없이 생각한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건 누나의 가슴이다. 왜 누나의 가슴은 엄마의 가슴과 다르지. 물체로 치자면 같은 건데 내가 받는 인상은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엄마의 가슴을 문득 바라보는 일은 없는데 누나의 가슴은 나도 모르게 자꾸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만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이 소년은 화가 나면 유방 생각을 한다. 그러면 화가 나지 않는다.
소년은 친구들과 같이 숲속을 탐험하고 누나를 연구하면서 하나둘씩 미스테리를 풀어나간다. 이 미스테리의 시작과 끝은 간호사 누나. 문제의 해결하기 위해서 누나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소년은 의연하다. 어른답다. 소설을 읽고나니 마치 한편의 꿈을 꾼 듯하다. 한동안 소년, 간호사 누나, 펭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듯하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