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3일 간의 이야기
우리는 때때로 부정하고 싶은 현실과 마주한다.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제발 현실이 아닌 꿈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의 도시>(2011.여백) 주인공 K는 그런 현실과 마주한다. 소설은 토요일 아침을 시작으로 일요일에 이어 월요일 출근길 까지의 3일간에 K에게 벌어진 이야기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곱시에 울리는 자명종에 눈을 뜬 K는 주말임을 인식한다. 출근할 일이 없는 주말, 자명종은 울리지 않아야 정상인 것이다. 그저 사소한 실수로 생각한 자명종을 시작으로 K는 모든 것이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항상 사용하는 스킨의 브랜드가 바뀌었고, 생뚱맞게 자신의 잠옷은 아내가 입고 있으며, 딸 MS까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정신과 친구와 술을 마시고 헤어진 어제에서 토요일로 이어졌던 밤의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혼란스럽다. 거기다 토요일인 오늘이 처제의 결혼식이라는 사실과 핸드폰을 잃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처제의 결혼식에서도 죽었다는 장인이 등장하고, 장모마저 처음 보는 듯하다. 핸드폰을 찾아 어제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마주한 장소를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K와 부딪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K는 블랙홀에 빠진 기분이다.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일곱시에 자명종이 울리고 여전하게 낯선 일상이 계속된다. 정신과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자, 그는 가족을 만나보라 권한다.
오래 전 소식이 끊인 누이를 떠올리며 찾아 나선다. 누이의 전 남편였던 P교수 역시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이 JS는 과연 내 누이일까, 의심이 들었다. 하나의 사건을 서로가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가족과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K에게만 낯익은 그 모든 것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누이에게 자신이 보냈다는 편지에서 또다른 K를 만나기로 한다. 둘 중 누군가는 진짜일 것이며 누군가는 가짜일 것이다.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누군가와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소설의 주인공 k는 직장인이며,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사회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의 표본이다. 단 3일 동안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어쩌면 그의 내면에 잠재된 의식의 표출이었는지 모른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에 의해 존재하는 나를 벗어나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라고 하면 맞을까.
특정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K, MS, JS라는 이니셜은 나라는 존재도 결국은 수많은 타인들과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진짜 나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를 묻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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