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부터 고희 인생은 남달라 보였다. 70세까지 장수했다는 생물학적 나이 때문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경륜과 지혜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최근 행보가 이런 기미를 느끼게 한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때 보여준 그의 열과 성의, 마침내 흘린 눈물만 해도 혹자들의 비판이 없지 않았다. 마치 악어의 눈물, 또는 평창 유치를 위해 사면 조치한 빚갚음 아닌가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재계 인사들 평은 달랐다. 자신이 몸 던져 혼신을 다한 것은 물론 유치전이 벌어졌던 남아프리카 더반까지 대동한 사위 김재열 사장과 딸까지 전력 투구하게 만든 당사자는 이 회장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달 들어 또 하나 히트를 쳤다. 지난 1일 돌연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계열사인 아이마켓코리아(IMK)의 지분 전량을 매각키로 한 것이다. MRO 사업은 한마디로 대기업의 자녀들에게 화수분이나 다름없었다. 그룹 내 기업들이 소모하는 모든 사무기기 용품들을 공급하니 판로 걱정, 가격 걱정 아무것도 필요 없는 그야말로 ‘돈 나와라 뚝딱’의 요술방망이 비슷한 기업인 것이다. 거기다 합법적 상속의 신작로로도 부족함이 없다.
재벌기업마다 이런 MRO 사업은 오너 친족들의 놀이터로 없는 곳이 없었다. 사회문제가 된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아직까지 이런 게 숨어 있었나 국민들은 공정거래위원회, 언론 및 시민단체의 태만에 분기를 느낄 정도다. 사회적 난타를 당하기 시작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장만능 체제 모순으로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부터지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재계는 잠잠하더니 비로소 이건희 회장이 사업 포기를 가장 먼저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역시 한국의 1등 기업답다. 한국 정부의 예산만큼 매출을 올리는 회사, 반도체로 세계를 석권하는 리딩기업, 삼성 제품이면 애프터서비스가 틀림없다는 소비자 신뢰 등을 받으면서도 오너 개인 기부가 약하고 돈 되는 곳에는 어디고 간다는 몰염치성 등 때문에 비판받던 삼성이 역시 변신에도 재빨랐던 셈이다.
이 회장은 MRO 포기 하루 전날 천안ㆍ아산 지역 의료계를 강타할지 모른다는 대형 건강검진센터 건립도 포기 선언했다. 그렇다. 삼성답게 사소취대(捨小取大)가 옳다. 우리는 존경받는 기업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