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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붉은 와인빛, 록으로 풀어낸 ‘렌트’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연출자 박칼린, 에이즈·약물중독·게이문화 등 충격적 원작 파워풀한 멜로디로 되살려
연출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항해를 떠나는 배의 선장이다. 같은 원작이라도 연출에 따라 180도 다른 느낌으로 탄생한다.

직접 만나본 박칼린 연출은 꼼꼼하고 친근했다. 고성이 난무하거나, 누군가 연습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일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양반다리로 앉아 있다가도, 뭔가 번뜩 생각나면 배우 곁으로 튀어나갔다. 스스럼없이 바닥에 눕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연출답지 않은’ 행동으로 배우의 움직임을 변화시켰다. 직접 배우를 해본 경험 덕인지, 춤 추며 노래 부르느라 헉헉대는 배우에게는 “집에서 런닝머신 (레벨)10에 놓고 달리면서 노래 연습을 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내린다. 지난 9일 ‘렌트’ 연습이 한창인 대학로 연습실에서 박칼린 연출을 만났다.

▶‘박칼린표 렌트’…검붉은빛 청춘=뮤지컬 ‘렌트’는 요절한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인 뮤지컬. 1990년대 뉴욕의 빈민촌 젊은 예술가들이 에이즈와 약물 중독 등으로 죽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에이즈에 걸려, 죽기 전에 의미 있는 곡을 쓰고자하는 음악가 로저(강태을, 런), 로저의 룸메이트이자 영화제작자 마크(브라이언, 조형균), 에이즈환자이자 약물중독 댄서 미미(김지우, 윤공주), 거리의 드러머인 여장남자 앤젤(박주형) 등 하나같이 기구한 청춘들이다.

박칼린은 “그동안 국내에서 ‘렌트’가 밝고 유쾌한 청춘극으로 순화됐다”며 “원작의 본질은 에이즈, 마약 등으로 인한 혼란이 9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을 덮친 그 충격”이라고 했다.

박칼린은 이 같은 미국적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만한 연출가다. 혼란으로 가득했던 당시 미국 문화를 직접 경험했다. 이런 경험을 쌓아온 박칼린에게 ‘렌트’는 밝고 유쾌한 극이 될 수 없다. 표현은 발랄할지 몰라도, 극의 내용은 아픈 청춘들이 세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다.

따라서 ‘박칼린표 렌트’는 1996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렌트’가 내뿜었던 ‘렌트정신’으로 회귀한다.  “에이즈, 마약, 게이 문화. 이로 인한 혼란이 렌트의 시작점이에요. 이번 렌트는 어둡지만, 본질적인 혼란에 집중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관객들의 정서에는 큰 충격이 될 만한 내용이지만, 이번에 10주년 특별공연이라는 핑계 삼아, 원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보다 세고 아픈 내용도 그대로 내보낼 생각이에요.”

색으로 표현하면 검붉은 와인빛에 가깝다. 그림으로 치면 몬드리안에 비유할 만하다. 다채로운 색이 정확한 틀안에서 어우러지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수많은 청춘의 삶이 독립적이며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렌트’의 그것과 유사하다.

박칼린이 말하는 ‘렌트’의 가장 큰 매력은 음악이다. 젊은이들의 열정을 닮은 록을 토대로, 파워풀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의 곡이 극을 지배한다. ‘Seasons of love’가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지만 박칼린은 ‘Will I’와 ‘without you’를 꼽았다.

“(without you) 너 없이 구름은 다시 흐르고 꽃은 피고, 죽고 또 태어나는, 삶을 관조하는 듯한 차분한 슬픔이 좋아요.” 


▶ ‘No day, but today(오직 오늘뿐이죠)’=“미래도 없고,과거도 없죠. 이 순간을 마지막이라 믿고 살죠. 이것밖에 없죠. 오직 오늘뿐이죠.” 극중 약물중독 댄서인 미미가 로저를 향해 노래부르는 ‘No day, but today’는 극의 주제를 담고 있다. 내일이 없는 청춘, 살아갈 날이 오늘뿐인 부나방 같은 젊은이들의 삶을 향한 절박함은 애잔하다.

박칼린은 “극의 핵심은 ‘No day, but today’라는 표현에 있다. 에이즈에 걸려 언제 죽을지 마음 졸이며 사는 이들이, ‘내일 다시 눈 뜰 수 있을까’ 두려워하면서도 오늘에 집중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연출가로서 특수한 상황에 처한 극중 인물에 어떻게 공감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계산없이 살진 않아요. 저처럼 철저히 기획하고, 생각 많이 하고 사는 사람은 극중 인물들과 다르죠. 하지만 ‘No day, but today’라는 그들의 모토는 공감해요. 미친듯이 오늘을 달린다는 건 저와 그들의 공통분모죠.(웃음)”

▶연출 박칼린, 열정의 리더십=박칼린은 어떤 기교보다 극의 본질적인 주제에 천착하는 연출가다. “연출가로 저는, 군더더기를 싫어하고 깔끔한 작품을 좋아해요. 아무리 재밌는 신이라도 스토리 라인에 도움이 안 되면 절대 안 넣죠. 개그콘서트가 아니잖아요. 그냥 무대 위에서 까부는 건 정말 싫어해요. 단순 재미를 위한 쇼타임을 살짝 넣을 순 있겠지만, 그걸로 도배는 안 하죠. 원작이 갖고 있는 매력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연출가로서 가장 중요한 리더십. 박칼린의 리더십은 오롯이 그의 열정과 내공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는 연출이라는 역할에 대해 “연출, 음악감독, 배우.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향하는 작업”이라며 “연출은 큰 그림을 그려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8.28~10.9 충무아트홀 대극장.

조민선 기자/ 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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