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한용의 다섯 번째 시집 ‘유령들’(민음사)이 나왔다. 전쟁과 테러, 민족과 인종, 종교, 정치적 분쟁 뒤 집단 살인, 광란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 이 르포 시집에서 전쟁과 폭력은 일상처럼 전개된다.
18세기 태즈메이니아 지역에서 일어난 영국과 원주민의 싸움부터 가나의 케이트코스트 성 황금해안에서 벌어진 아프리카 노예 매매, 난징 대학살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5ㆍ18전쟁과 베트남전, 아프간전쟁 등 시인은 살인과 강간의 무참한 장면을 극사실화처럼 다만 그려나간다.
“보스니아 북부 첼리나츠 시에서는 ‘특별명령’을 내렸다. (중략) 약탈자들은 인종 청소를 위해서는 살인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아버지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자식을 거세시키고, 딸을 성폭행하도록 했다.”(새들의 노래)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의 극한 끝에 겨우 시는 매달려 땅에 떨어진다. 폭력과 광기의 긴 서사를 통해 시인은 내 안의 다른 나를 예시처럼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