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종말은 국가파산
빚경제 악순환 고리 끊으려면
퍼주기식 포퓰리즘 접어야”
벌칙제로 의료보험 수요통제
사회보험의 완벽한 분리 등
‘분배정의’에 대한 명쾌한 접근
“현재 국가부도의 카운트다운은 계속되고 있다. 화폐개혁도 더는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느 누구도 그 후폭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발터 비트만 스위스 프리부르대 교수가 지난해 ‘국가부도’(원제:Staatsbankrott)란 책에서 경고한 게 최근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미국의 달러 패권시대의 종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각국의 재정상태도 손놓고 바라볼 수 없게 됐다. 추가 구제금융까지 받은 그리스를 비롯해 발등의 불이 떨어진 이탈리아, 심지어 독일, 영국, 프랑스 등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이 나온다.
비트만은 누차 빚을 빚으로 갚는 빚경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경고해왔다. 그는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국가부도’(비전코리아)에서 국가부도의 역사를 꿰뚫으며 교훈을 끌어낸다.
어떤 나라가 전쟁이든 금융위기든 이후 경제가 회복될 때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의 재정정책을 종식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경우 길은 자명하다는 사실이다. 즉, 불어나기만 하는 부채를 계속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신용등급이 낮을 경우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자 상환이 늘어나 공공세입 증가율을 잠식해버린다. 여기에 높아만 가는 인플레이션이 가세해 통화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다. 결국 심각한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국가부도 사태를 막으려면 정치권의 의지가 필요하다며, 종합적인 건전화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바꿔 말해 포퓰리즘에 편승한 퍼주기식 복지를 접고 과감하게 줄여 나가야 한다는 경고다.
사회복지의 덫을 지적해 나간 저자의 통찰이 빛나는 지점은 재정의 악화 등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윤리와 책임 등 자유주의 가치와 연결한 점이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국가나 여러 단체가 자신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기대하게 되는 무책임성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는 현실을 우려한다. 생존 자체를 국가에 의지해 유지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사회복지의 원리가 훼손된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단순히 재정파탄을 경고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교훈을 통해 모색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제안한 사회보험의 시스템 개혁, 가계 주택담보대출 비율, 민간기업의 자금조달 방식 개혁은 그의 말마따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정도로 당장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특히 분배정의라는 이름 아래 갈수록 요구가 늘어나는 사회보험의 경우 저자의 입장은 명확하다. 공공예산에서 지출되는 지원금으로부터 모든 사회보험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실업급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실업보험 재정은 피보험자가 자신의 임금규모에 따라 내는 일정한 보험료로 조달되고 애초 국가지원금을 통한 조달은 거절돼야 한다는 것이다.
골칫거리인 의료보험 수요를 통제하기 위한 보너스와 벌칙제도 등은 솔깃하다.
‘카운트 다운은 시작됐다’는 마지막 장은 서바이벌 게임 같다.
미국 부채와 달러, 일본, 유럽, 독일의 현상진단과 함께 투자자를 위한 조언도 귀기울일 만하다. ▷주택과 관련한 빚을 가능한 한 빨리 상환하라 ▷위기 시 가장 안전한 투자는 금이다 ▷평가절하 추세에 있는 통화 투자는 피하라(그 한복판에 있는 것이 미국의 달러화다) ▷유동성은 자국통화로 보유하라 등 안전지침을 제시한다.
저자의 재정건전화 프로그램은 원칙론에 입각해 있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복지의 얽히고설킨 그물망의 실타래를 푸는 데 중심을 잡아준다. 분배정의, 소득재분배의 한도 등에 대해서도 명쾌하다. 수혜자 원칙과 국가가 지원해야 할 대상 줄긋기다.
비트만의 책을 차근차근 읽고 나면 세수한 것처럼 말끔한 느낌이 드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