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이즘에서부터 저패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서양인의 일본 애호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그 인물이 ‘현대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라면 예사롭지 않다.
“나는 일본을 알기 위해 일본화를 본다.”
일본화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던 드러커는 ‘붓의 노래’(21세기북스)를 통해 일본의 미의식에 숨은 내면세계의 고갱이를 밝혀낸다.
그는 하쿠인 에카쿠의 달마도에서 ‘정신적 자아실현’을 읽어낸다. 일필휘지의 붓놀림에서 자아완성을 강조하는 일본의 특유의 학습개념과 인간관을 보는 것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일본의 산수화는 “존재의 무게중심을 나타내는 정신의 풍경”이자 일본 그 자체다. 산수화의 여백에서 “디자인을 향한 억제할 수 없는 경향이자 미학의 기초”를 발견하는 그의 미학적 해석은 좀 과잉이다 싶지만 신선하다.
경영학자답게 미학적 분석은 산업과 경영에 대한 통찰로도 이어진다. 일본화에 공존하는 금욕성과 장식성, 이 양극성은 갈등과 대립이 아닌 존재에 필요한 긴장이며, 일본의 산업에 역동과 창의의 숨결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드러커의 통찰은 오래 들여다본 자만이 아는 날카로움이 있다.
하지만 흠결 또한 없지 않다. 동양의 보편성을 일본의 특수성으로 여긴다든지, 센가이의 그림을 피카소보다 150년 앞선 것으로 추어올리는 것은 성급한 예단, 편애에 가깝다. 또 일본의 정신주의에 놓인 집단주의적 퇴행성에 너그러운 건 아닌지, 한국인으로선 못내 불편한 구석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려는 열정과 경건한 탐구, 박람강기와 심미안은 경탄할 만하다. 무엇보다 경영학이 ‘진정한 인문예술로서의 경영’이 되기를 바랐던, 경영학의 석학으로서의 면모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