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관계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음악시장에는 레전드가 없다. 설령 전설적인 가수가 있을지라도 이름만 있을 뿐 시장에서는 좀처럼 대접을 받지 못한다!” 미디어나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지금의 인기가수들에게만 집중하기에, 또 과거 음악에 대한 기록 부재로 인해 거장이나 중견의 음악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젊은 가수가 주도하는 시장이 갑자기 불황에 빠질 경우, 음악계가 속수무책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근 20년간 우리 음악계가 실제로 그래왔다.
서구의 경우는 젊은 가수들이 부진할 때 거장들이 돌아오거나, 아니면 수요자들이 거장들의 음악에 주목하면서 시장이 나름의 규모를 유지한다. 일례로 해산한 지 40년이 넘는 그룹 비틀스의 음반은 아직도 핫 세일즈 품목이다. 비틀스 앨범은 2000년 당시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었던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신보와 시장에서 맞붙어 승리했고, 2009년에도 리마스터드 앨범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비틀스 말고도 아바, 레드 제플린, 퀸,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 롤링 스톤스 등 록 레전드들의 음반판매량은 신세대 최고가수들의 것에는 못 미쳐도 상당히 꾸준하다. 오는 9월에 앨범 박스세트로 돌아올 예정인 핑크 플로이드에 대해 수개월 전부터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레전드 시장’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이 견고한 레전드 시장 덕에 미ㆍ영 그리고 일본 음악시장은 상대적으로 경기침체를 덜 탄다.
우리에게 레전드는 없는가. 광고를 통해 주목받은 곡 ‘미인’의 신중현과 ‘세시봉과 친구들’ 열풍을 일으킨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그리고 이장희야말로 우리 음악계의 빛나는 전설들이다. 조용필은 말할 것도 없다. 소록도 위문공연, 전국 순회공연, TV프로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 출연자의 잇단 조용필 선곡으로 가왕(歌王)으로서 재조명을 받았다. 그의 노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인기곡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잠깐 바람이 불 뿐, 지속적으로 전설들의 음반이 팔리거나 음원이 다운로딩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음악시장에서는 레전드가 소외돼 있는 형국이다.
‘나는 가수다’ 열풍 속에서 시청자들은 새삼 윤도현, 김범수, 김연우, 임재범, 장혜진의 노래를 재발견했다. 레전드라고 하기에는 성급하지만 중견임은 분명한 가수들이다. 이들이 ‘난 가수다’를 통해 다시 관심대상으로 점프하는 것을 보면서 활동 10년에서 15년차의 우리 중견들도 그간 얼마나 소비자들로부터 멀어져 있었는가를 실감한다. 5년 가까이 아이돌 그룹이 판세를 장악하면서 레전드는 물론 중견가수들도 기죽은 채 맥을 못 추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시장은 젊은 인기가수, 중견가수 그리고 전설 등 3대 세력이 나름의 지분을 가지며 공존해야 건강하다고들 한다. 물론 시장을 리드하는 축은 당장의 인기가수들이겠지만 중견과 거장들도 대우를 받아야 시장이 안정을 획득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수다’ 열풍, 조용필의 재림, 세시봉 바람은 중견과 레전드의 부재라는 우리 음악계의 뼈아픈 약점을 반증한다. 중견과 레전드가 상응하는 지분을 획득하면서 불황에도 견디는 실한 음악시장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망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