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중에 정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정설을 아는 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게 되었다. 어떤 점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성공적으로 주입되었다. 그들은 잔인무도한 현실 파괴도 감행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파악하지 못할뿐더러, 발생하는 공적 사건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지 덕분으로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이나 꿀꺽꿀꺽 삼키지만 아무 탈도 없었다. 마치 한 알의 곡식이 소화되지 않은 채, 아무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새의 창자를 통과하듯이 말이다.
<1984>(문학동네.2010)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전체주의의 무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조지 오웰이 1949년 미래를 예견하여 쓴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정치 소설이다. 그는 미래가 전체주의에 지배당하는 반유토피아적 세계를 그렸다.
21세기에 이른 지금 1984의 배경이 된 영국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묘사하고 있는 끔찍하고 잔인한 세계가 지금의 현실과 오버랩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왜 일까.
1984의 세계는 모든 것이 당에 의해 통제되는 세계이다.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로 사람들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 음식, 지식, 생각, 사람의 감정 조차도 당에 의해 철저히 만들어지고 통제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기억과 감정이 사실이라 믿는다.
당의 선전활동과 기록 날조와 같은 여러 작업에 의하여 사람들의 기억은 조작된다. 당은 독재 권력을 강화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과거를 날조함으로써 과거를 통제한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곧 현재를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곧 현재를 지배하며 이어 미래에까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고자 한다.
사람들은 과거의 일들은 잊어버리고 당이 주입된 기억만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몇몇 지성인들은 사장되고 아예 존재하지 않은 자가 되어 버린다. 그들이 어려운 통계치를 내세우면 경제가 성장하였다는 말을 하면 기뻐하며 믿어버린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사람들이 더이상 사고하지 않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세계에서 항거하며 생각하는 마지막 남은 '인간'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숨 막혀하며 모순과 횡포에 절망하면서 역겨워한다. 그런 그도 결국 잔혹한 고문과 세뇌를 받아 당의 두목인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조지 오웰이 그린 미래 인간 세계는 분명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다. 판단력을 잃고 더 이상 사고하지 않은 인간은 그저 숨쉬며 살아가는 나무토막일 뿐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불의한 권력과 독재에 항거하는 한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고하고 있는 지 스스로 자문해야 할 때이다.
"그들은 의삭을 찾을 때까지는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의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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