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조민선기자]극동에서 날라온 낯선 선율에 유럽이 넋을 잃었다. 에든버러 축제의 예술감독 조너선 밀스는 서울시향의 공연 직후 페스티벌 무대에 다시 한번 서달라고 공식 초청했다. 서울시향은 세계 축제의 중심 에든버러에서 한번도 아닌, 두번씩 초청을 받으며 이제 명실상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경지에 올랐음을 입증했다
24일(현지시각) 영국 에든버러 어셔홀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공연은 이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출발점(starting point)에 선 그들의 내공을 여실히 보여준 무대였다.
단순히 축제 참가에 의의를 두지 않고, 세계 무대로 한발 더 나아가려는 오케스트라의 지향점 또한 명확했다. 올해 축제의 주제가 ‘동양과 서양의 만남’, ‘아시아와 유럽의 만남’인 것처럼, 동서양의 음악을 아우른 폭넓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레퍼토리는 한국 오케스트라만의 매력을 보여줄만한 고도의 전략이 숨겨져 있었다.
유럽내에서 명성이 높은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을 선택, 여타 클래식 공연과 비교할 수 없는 동양적 색채를 부각시켰다. 더불어 유럽인들에게 친숙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을 함께 들려주며, 축제의 주제인 ‘동서양 융합’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달했다.
첫곡은 매우 유럽적인 사운드인 메시앙의 ‘잊혀진 제물’로, 유럽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져들었다. 두번째 곡은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슈(2009)’. 이 곡은 서양의 오케스트라와 동양의 악기인 생황이 결합한 작품으로, 중국 출신의 생황 연주자 우 웨이의 신비로운 연주가 1800여 청중을 매료시켰다. 관객들은 “저 악기가 도대체 무엇이냐. 처음 들어보는 매혹적인 음색”이라며 호기심 가득한 태도로 음악에 몰입했다.
생황 협주곡은 스코틀랜드와도 환상의 궁합이었다. 청중들은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와 유사한 느낌”이라며 동양적인 사운드를 현대음악으로 펼쳐낸 작곡가를 향해 박수를 쏟아부었다.
영국 가디언은 진은숙의 곡에 높은 점수를 주며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깊이있는 음악을 최고 수준으로 들려줬다”고 평가했다.
서울시향은 독특한 동양적 색채에 안주하지 않고, 마지막 곡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유럽 오케스트라의 단골 레퍼토리인 차이콥스키의 ‘비창’으로, 동양 오케스트라에 대한 유럽인들의 선입견을 말끔히 씻어냈다.
이날 시향은 정해진 레퍼토리 외 2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여기엔 유럽을 주무대로 활동해온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내공이 한몫했다. 그는 유럽인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어떻게 한국인들만의 색채를 표현해야할지 영민하게 파악하고 있는 지휘자다. 정명훈 감독은 이날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한국인이 얼마나 뜨겁고 열정적인 사람들인지 음악으로 나타내자고 항상 단원들에게 말한다”고 밝혔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 존 스콧(66ㆍ에든버러)은 공연시작 전 “사실 잘 모르는 오케스트라다. 솔직히 기대 안하고 (음악 들으러) 왔다”고 말했지만, 공연이 끝난 뒤 “매우 좋았다(excellent). 열정적이며 다채로운 공연이었다. 특히 생황이라는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융합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bonjod@heraldcorp.com <사진제공=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