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첫 국립과학박물관장을 지낸 조복성 선생은 1948년 ‘곤충기’를 펴내며 이렇게 한탄했다. 그의 곤충기가 63년 만에 다시 출간됐다. 황의용씨가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문고본으로 나온 ‘곤충기’ 원본을 찾아내 거기에 조 관장의 평소 글을 보태 ‘조복성곤충기’(뜨인돌)란 제목으로 펴냈다.
특별한 식도락가, 연애의 고수, 패션과 스포츠 스타 등 곤충의 38가지 각양각색의 이야기는 인간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저자의 생명관, 자연관과 관련이 깊어보인다. 그는 곤충들도 인간들 만큼이나 개별적이고 개성적이라고 본 것이다. 게으르고 둔하지만 천재적인 시골악사 여치와 민충이, 뛰었다 하면 10만점의 방아벌레, 아름다운 밤의 무용가 하루살이 등 사람들이 저마다 재주가 있듯 곤충들의 각각의 특별한 재주를 부각시켜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밀하게 관찰하되 격을 둔 인간의 태도가 아닌 같은 생명체로서 특성을 파악하고 행동을 이해하려는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등장하는 곤충들이 모두 우리 생활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친숙한 토박이라는 점도 저자의 배려로 해석된다. 뱃속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독가스 폭탄을 항문 주변에 장진한 채 돌아다니다가 치명적인 공격을 하는 방구벌레, 독성으로 암살용 독약으로 쓰였지만 민간에선 성병치료제로도 효험이 알려진 청가뢰, 중국 궁녀들의 독특한 오락거리의 대상이 된 귀뚜라미 등의 얘기는 새롭고 정겹다.
함께 실은 곤충채집기는 일제 보통학교시절, 곤충에 흥미를 갖게 된 이야기부터 금강산, 백두산, 몽골 등지를 다니며 열정적인 곤충 채집을 한 얘기들이 흑백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겨있다.
조복성이란 이름은 ‘자연과학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어찌보면 이 땅 곤충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곤충의 이름은 상당수 그가 지어준 것이다. 그중 조흰뱀눈나비, 조복성박쥐(황금박쥐 또는 붉은박쥐)등 4종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