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년후에 깨어난 냉동인간
신의 존재 밝히는 신부
낙원 지배하려는 인간군상
현실의 끈 놓지않는 상상력
배명훈 특유의 풍자 가득
“67447년 74월 257일부터 258일 사이에 ○○(문자 표기 불가)성단 및 인근 지역 항성 742개가 일시에 연락이 두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난이었다”(‘신의 궤도’중)
궤도를 이탈한 먼 곳을 떠도는 소설가 배명훈이 이번엔 우주 행성에 착륙했다. 그의 첫 장편소설 ‘신의 궤도’는 우주 개척과 행성 전쟁, 그곳에 이주한 인간들의 드라마를 거창하지만 섬세하게 그려 나간다.
인공위성 재벌 회장의 숨겨놓은 딸, 은경은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역겨워하지만 아버지의 은밀한 배려로 러시아 비행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은경은 코스모마피아의 음모에 얽혀 사형선고를 받은 뒤 아버지 덕에 냉동인간이 돼 동면한 다음 15만년 후 나니예 행성에서 다시 깨어난다. 바로 아버지가 개발한 휴양 행성이다. 낙원 프로젝트로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어느 시점, 환경으로 고정시켜 놓은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피튀기는 권력투쟁이 있다. 낙원을 지배하고자 하는 관리소장과 천문교가 권력의 두 축이다. 투자에 참여한 고객 20만명이 몰사한 우주선,도착시점보다 8만년 일찍 잠에서 깨어난 고객들이 우주선 안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미스터리로 얽혀든다. 고객들이 마지막 재산보호 장치로 마련한 프로젝트, 나니예 파괴 프로젝트는 여전히 가동중이다.
배명환 소설의 재미는 낯선 공간과 시간, 그 속에 들어있는 수정구슬 같은 또 하나의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데 있다. 연극적 문법인 낯설게 하기와도 같다. 우주공간을 날아다니지만 끊임없이 ‘여기 현실이 있다’고 인지시키는 것이다.
가령 전작 ‘타워’에서 미래 도시국가 타워의 일상을 그리면서 비정규직, 권력의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했듯, 이번 ‘신의 궤도’ 역시 신의 논쟁, 권력투쟁 등 이 시대의 모습을 투영한다.
“문 밖으로 나가면 뭐가 있는데요?” “글쎄요. 문 바깥쪽도 역시 세상이거나 아니면 그냥 낭떠러지이거나. 그래도 일단은 문이 있잖아요.” 우주의 행성에서 이뤄진 대화다. 그것이 어떤 행성이 됐든 탈출하려는 시도, 두드림에 배명훈 소설의 새로움이 있다. |
나물 신부는 신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신의 공전궤도를 풀어내는 중이다. 그는 사도들이 전한 여섯복음서에 기록된 공전궤도에는 신이 없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에 배명훈 특유의 아이러니와 풍자가 있다. 그들이 찾는 신은 행성의 창조주일 터이지만 그는 다름 아닌 행성을 개발한 김 회장이다. 그들이 찾는 신이 아님은 분명하다.나물 신부는 나니예행성 밝에서 비행중 신을 느낀다. 이론의 문제가 아니었다.
좁은 상상의 마당을 벗어날 문을 달아주는 것도 그의 소설의 매력이다. 나니예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 기술인 신 만들기는 그 하나. 그 신은 아무나 만질 수 없는,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올려놓여 있다. 쉽게 올라갈 수는 없지만 누군가 간절히 원한다면 결국은 닿을 수 있다.
배명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 혼란스러운 걸 가까이 끌어다 단순하게 부려놓는 재주가 있어 보인다. 그가 제시하는 어마어마한 숫자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 그리고 거기서 바라보면 현실의 문제들이 얼마나 명확하게 보이는지 알게 된다. 그의 소설에 사회 SF소설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